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잔인한 사월

취몽인 2020. 4. 27. 15:47

잔인한 사월

 

찬 바람이 유난했던 4월이 가고 있다. 파주에 다시 온 지도 어느듯 열한 달이 지난다. 한 달 더버티면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 애초에 일 년을 과연 다닐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채울 듯 보인다.

일 년 남짓의 시간 동안 부침은 만만찮았다. 점령군과 터줏대감의 세력 다툼, 예전 나의 위치와 현재 내 위치 사이의 거리에서 비롯된 착각 그리고 낭패, 포기 같은 것들이 있었고 거의 밀려날 뻔 했던 시간, 어정쩡해진 위치 같은 것들도 그 시간 속에 빼곡히 꽂혀있다.

다행히 버틸 수 있었던 건 그간 바닥에서 쌓은 내공 덕이다.^^

 

보험쟁이 몇 년, 택시운전수 일 년은 자존심 따위를 언제든지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강단(?)으로 남았다.

쪽팔려도, 울화가 치밀어도 참을 수 있었다. 현재의 안온함을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기회비용이라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유효한 전략이다. 그런데 스스로 비겁하다는 생각은 쉬 이겨내기 힘들다. 아마 이 곳에서 쫒겨나게 된다면 그 이유일 가능성이 클것이다.

 

이곳은 먼 도서관이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반 자유로를 치달려 출근하는 쾌적한 도서관이다. 금년 들어 넉 달간 80여권의 책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석수도서관을 다닐 때도 읽지 못했던 분량이다.

일도 한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못하는 일을 나름 많이 한다. 직영 카페가 생긴 것도 내겐 행운이다. 돈을 벌어야 하니 홍보도 해야한다. 그걸 내가 한다. 늘 마뜩찮아 하는 눈초리는 느낀다.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하는 지청구도 듣는다. 모르는 척 한다.

젊은이들이 하는게 맞다. 하지만 스스로 그렇다 말할 수는 없다.

버틸 때까진 버티자. 현재의 모토다.

 

그런데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장 많은 시간을 詩에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詩는 내 남은 인생에게 술 한 잔 살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그저 좋아서 라고 말하기엔 예의 스스로 비겁함을 느낀다. 나는 詩에 매달려 허명을 얻고자 함이 분명하다. 아무리 거부해도 속에 숨은 사실이다.

그런데 재주는 없고 시간도 많이 늦었다. 그런데 왜 못버리는가? 대안이 없어서? 잘난척 할 대안이?

아마 맞을 것이다.

 

곧 예순. 빠르게 저물 것이다. 먹고 사는건 택시 다시하면 될것 같고. 사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詩말고 없다. 가족? 그건 이유가 아니고 운명이라 하자.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4월말에 길을 잃었다.

 

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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