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中虎巖
내가 사는 아파트는 동향이다.
전방 좌우로 다른 아파트들이 서있어 햇볕이 많이 들지 않는다. 그 탓에 베란다에서 식물들을 키우기가 어렵다.
대신 정면으로 호암산이 우뚝하다.
겨우내 마른 가지로 가득했던 산은 한동안 화려한 꽃과 풋풋한 연두의 때를 지나 녹음이 짙어지는 중이다. 그 모습들을 산 위의 호암도
산 아래의 나도 즐겁게 바라본다.
오늘은 비가 내려 호암 기슭이 유난히 푸르다.
이마 근처에 구름(?)을 걸친 녀석이 상쾌해 보인다 .
나는 주중에 목, 금 이틀을 쉰다. 직장 생활 끝을 향해가는 과정이다 싶어 내심 불안도 하지만 남들 못누리는 호사라 생각하기로 한다. 주 4일 근무, 모두가 바라는 환상을 어쨌던 누리고 있으니..
가족들도, 친구들도 다 제 일에 바쁜 주중에 혼자 여유롭다. 누가 부르지도 않고 내가 누구를 찾지도 않는다. 맘이 동하면 차 몰고 가까운 포구나 슬쩍 다녀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책이나 읽는다. 커피도 내려 마시고 혼자 라면도 끓여먹고.. 강아지 희롱이나 하며 지낸다.
이럴 때 창밖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호암산이 있어 좋다. 아내가 좋아하는 오색보다 못하지 않다. 오늘은 비가 오니 산 내음이 집까지 넘쳐 흘러온다. 아파트 속이 산속이다.
오늘은 E.F.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마저 읽을 생각이다. 비맞는 산곁에서 경제학을 읽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경제학을 말하는 슈마허이니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내일 토요일 하루 출근하면 일요일 또 쉰다.
앞 일은 앞으로 생각하고 지금은 그저 잘 지내자. 자주 없을 기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