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취몽인 2020. 5. 27. 12:48

 

 

노장 읽기 세번째.. 강신주의 시각으로..

결론, 장자를 알고자 했으나 먼저 노자를 버리게 됨.

'노자의 도는 무엇보다 수탈과 재분배의 교환논리를 가리킨다. 정확히 말해서 통치자가 재분배를 은혜와 선물로서 수행하게 되면, 피통치자들은 자발적으로 수탈을 감내하게 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강신주는 노자를 중국의 마키아벨리 비슷한(?) 곳에 자리하게 한다.

동시에 장자는 노자와는 전혀 다른 자유와, 차이의 철학자로 해석한다. 들뢰즈 비슷한..

 

노장사상이란 건 없다는 주장이다. 책을 읽으면 이해는 된다. 그저 후대가 크게 분류하는 과정에서 생긴 잘못됨 묶음 정도라는 것.  

'노자가 통치자에게 권고하는 도에는 원초적 수탈과 폭력, 즉 원초적 불평등의 상태가 전제되어 있다.'

피통치자들에게 수탈을 완벽히 감추고 선물 또는 호의로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노자 정치철학이 주장하는 도, 통치자를 위한 도인 것이다. 거기에 민주주의가 자리할 틈은 없다.

 

장자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의미가 생성되고, 그 만남은 주체가 일체의 초자아에서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는 가르침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한편의 시론 같기도 하다.

 

성경 66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강신주의 노자, 장자 또한 "노자는 권력자를 위한 정치철학자"로 장자를 "일체의 고정관념이나 공동체적 규칙으로부터 자유한 상태로 타자와 진정한 조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한 철학자"로 규정한다.

 

두꺼운 책이지만 내용은 간명하며 강신주 특유의 설득 논리가 재미있다.

 

문제는 노자를 다시 읽을 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고, 궁금한 것은 이 책이 나왔을 때 기존의 노자관련 선학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점이다. 판을 다 엎어버렸으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강신주는 성공한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