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GEO

졸지에 말벌

취몽인 2020. 7. 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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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말벌


말벌 한마리
세곡동 어디쯤을 달리는데
자동차 앞유리에 앉는다
맞바람에 납작해져 날아가지 못한다
어쩔줄 몰라 하더니
아래편 홈에 머리 쳐박았다

멈출 수 없어
그저 안타깝게 고속도로를 달린다
한 오십 리쯤 왔을까
삼성산 기슭 느리게 지날 때
어찌어찌 날개 추스리더니 숲으로 날아간다

다행은 잠깐
말벌 오십 리는 서울서 뉴욕쯤 되지 않을까?
집도 식구도 없는 객지에 떨어져 녀석은 어디로 갈까?
어느 나뭇잎 귀퉁이에 붙어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하다 시나브로 시들지 않을까?
둘 곳 모르는 꿀 한 모금 붙들고 울음마저 굳지 않을까?

졸지에 오십 리
너무 멀어 큰 일이다
그놈 날아간 산모퉁이 유난히 깊다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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