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묵은 시집 읽기

취몽인 2020. 11. 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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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시집 읽기

아는 형님은 얼마전 오래된 시집을 내다 버리셨다는데 나는 요즘 오래된 시집을 꾸역꾸역 새로 사서 읽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새 시집 살 돈이 아까워 헌 시집을 사서 읽는 것이다. 굳이 하나 더 이유를 찾자면 새 시집들 상당수는 내게 너무 어렵다는 것 정도.
최신의 시 경향을 알고 넘어서고자 노력하는 것이 시인의 자세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애시당초 나라는 자는 대단한 시인이 될 싹수가 없으니 그런 노력은 하고싶지 않다. 그저 시를 읽어 마음이 좋으면 그만.

오래 된, 그래 봐야 한 이삼십 년 전 정도지만, 시들은어쨌든 편하다. 내 젊은 날들이, 시절이, 역사가 그곳에 있다. 그곳에는 또 그 무렵 시인들의 날카롭고 깊은 슬픔들이 있다. 세월이 지났다고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행이나 최신 스타일이 꼭 그 시들보다 가치있다 말할 수도 없다.
역사가 돼가고 있는 시인들의 젊은 시절을 시로 만나는 재미도 크다. 현재의 모습과 현재의 시적 목소리를 익히 알고 있는 시인들의 그때 모습과 목소리는 흥미롭다. 대부분은 모서리가 닳아 어느 정도 순해진 시인과 시들. 그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험상궂은 주먹돌이었던 시절을 읽는 일. 각자의 서사를 읽는 일이기도 하다.

형님이 내다버린 그 묵은 시집들을 챙기지 못한 일이 내내 아쉽다.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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