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대
돌아가신 어머니 집에서 촛대 하나를 가져왔다. 쇠로 만들어 은색 도금을 한 묵직한 촛대다. 정확치는 않지만 우리 집안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일 것이다. 아마 오십 년은 족히 되지 않았나싶다.
한참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철공소에서 오래 일했다. 큰아버지가 철공소를 운영해 일가를 이루셨고 아버지도 그 곳에서 일을 하셨다. 기능공은 아니지만 타고난 눈썰미와 손재주로 한 몫을 하셨다.
촛대는 그 시절 아버지가 공장에서 직접 만드신 물건이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촛대 외에도 부엌의 부삽이나 연탄불 뚜껑 같은 것들도 만들어 썼던 것 같은데 소용이 다해 모두 없어지고 그나마 최근까지 쓸모가 있었던 촛대만 남은 것이다.
어머니 방 냉장고 위에 언제나 놓여있던 빈 촛대. 길고 하얀 양초를 꽂고 심지에 불을 붙인 기억을 깡그리 잊은 촛대. 어머니는 매일 그 촛대를 올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37년전 먼저 세상을 떠난 정없는 남편을 생각하셨을까? 원망하셨을까? 그저 마지막 남은 남편의 유품이니 어쩔 수 없이 두셨을까?
생전에 촛대에 대해 한번 물어봐야지 생각만 하다 덜컥 어머니는 떠나버렸다. 촛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오래 바라보던 주인이 떠나는 모습을 고스란히 봤을 것이다. 촛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시대는 다 떠나가고 이제 촛대는 내 책상 옆에 놓였다. 아버지의 손길과 어머니의 눈길을 완고하게 담고서 약간 기울어진 모습으로 서있다. 아마 나는 이 촛대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부모의 기억을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오래 만져보고 쳐다볼 것이고 내 아이들에게도 촛대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내일은 양초를 하나 사와야겠다. 요즘 요란스런 향초 같은 건 안되고 정전되면 켰던 희고 긴 양초, 아래에 구멍이 뚫려 촛대에 꽂을 수 있는 그 양초에 불을 붙이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른대며 그림자로 만나는 모습을 보고싶다. 슬퍼도 잘 살겠노라고, 걱정마시라고 촛불 쓰다듬으며 말하고싶다.
촛대를 가져온 건 참 잘한 일인 것같다.
201006
'이야기舍廊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덟시에 떠나는 두 편의 기차 (0) | 2020.11.11 |
---|---|
묵은 시집 읽기 (0) | 2020.11.05 |
계급. (0) | 2020.08.28 |
예수는 스테반을 기다린다 (0) | 2020.08.21 |
절름발이 (0) | 2020.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