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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죽이기
쌓인 시간이 제법 부담스럽다는 걸 요즘 느낀다.
시간이 없다. 너무 바쁘다 하는 말은 살면서 그리 많이 해보지 않았다. 일하는 손이 좀 빠른 편이기도 하고 천부적인 게으름이 일 자체를 많이 만들지 않는 탓도 있다. 평생 계획을 세우고 그 틀안에서 움직여야 불안하지 않은 소심함도 한 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상황은 내 평생에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두 달 반. 칩거하면서 빈 집에는 시간이 넘친다. 가끔 약속이 있어 나가기도 하지만 일 주일에 닷새 정도는 집콕이다. 그러다보니 널린 시간의 무게와 싸우는 일이 제일 큰 일이 되었다.
내가 시간과 싸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을 잘게 썰어 조금씩 소모하는 전략이다. 깨어 있는 하루를 한 시간 단위로 잘라 어느 시간에는 어떤 책을 읽고 어느 시간에는 무슨 글을 쓰고 또 어느 시간에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하루는 대략 열 토막 정도로 잘려 소모된다. 학교 다닐 때 버릇이 남아 한 시간에 십 분 휴식도 끼워넣는다. 한 시간 휴식 시간 뒤에도 십 분 휴식. 이렇게 하면 휴식도 할 일이 되고 시간은 내가 쥔 고삐를 순순히 따라오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다른 한 가지도 큰 틀에선 비슷하다. 요일을 자르는 것이다. 월, 수, 금은 무조건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병원이나 고용센터 방문은 화요일로 몰고 나간 김에 도서관 볼 일까지 끝내고 들어온다. 저녁 약속은 목요일, 가족 식사는 토요일에 식료품 장보기와 묶어서, 일요일은 교회. 뭐 이런 식으로 큰 토막을 쳐놓으면 시간의 크기는 다소 작아져 보인다.
오늘은 주간 토막에 한 가지를 더했다. 목요일 점심 먹고 난 후 한 두 시간 거리의 포구 드라이브를 하는 일이다. 먼 여행은 부담스럽고 늘 바다는 보고 싶으니 일주일에 서너 시간 들이면 합리적 절충이 될 터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시간을 잘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토막내 쓰고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빈 집에서 그저 막연히 불안한 나를 시간이 조각조각 몰아붙여 평생 학습시켜온 제 방식으로 나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생각. 넋 놓은 자유를 죄악이라 내 귀에 고함지르는 시간이란 오래된 지배자. 나는 모처럼 도착한 이 자유의 세상에서조차 저 모진 제국주의자 시간의 규율을 스스로 만들고 그 안으로 분열된 채 기어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눈 앞에 붙어 있는 일간 계획, 주간 계획표 노란 포스트잍을 뗐다. 시간 속에 나를 그냥 내던져 둬보자. 이놈이 내게 무슨 짓을 하는 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은 월요일 오전, 집에서 퇴고를 해야 할 시간.
그냥 다 덮고 음악이나 좀 들어보자. 이 놈이 뭐라 하는지.. 오전 10시 30분. 드비쉬의 달빛 연주가 막 끝났다. 녀석이 살짝 당황하는 표정으로 찰칵 숫자를 바꾼다. 10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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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죽이기
쌓인 시간이 제법 부담스럽다는 걸 요즘 느낀다.
시간이 없다. 너무 바쁘다 하는 말은 살면서 그리 많이 해보지 않았다. 일하는 손이 좀 빠른 편이기도 하고 천부적인 게으름이 일 자체를 많이 만들지 않는 탓도 있다. 평생 계획을 세우고 그 틀안에서 움직여야 불안하지 않은 소심함도 한 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상황은 내 평생에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두 달 반. 칩거하면서 빈 집에는 시간이 넘친다. 가끔 약속이 있어 나가기도 하지만 일 주일에 닷새 정도는 집콕이다. 그러다보니 널린 시간의 무게와 싸우는 일이 제일 큰 일이 되었다.
내가 시간과 싸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을 잘게 썰어 조금씩 소모하는 전략이다. 깨어 있는 하루를 한 시간 단위로 잘라 어느 시간에는 어떤 책을 읽고 어느 시간에는 무슨 글을 쓰고 또 어느 시간에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하루는 대략 열 토막 정도로 잘려 소모된다. 학교 다닐 때 버릇이 남아 한 시간에 십 분 휴식도 끼워넣는다. 한 시간 휴식 시간 뒤에도 십 분 휴식. 이렇게 하면 휴식도 할 일이 되고 시간은 내가 쥔 고삐를 순순히 따라오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다른 한 가지도 큰 틀에선 비슷하다. 요일을 자르는 것이다. 월, 수, 금은 무조건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병원이나 고용센터 방문은 화요일로 몰고 나간 김에 도서관 볼 일까지 끝내고 들어온다. 저녁 약속은 목요일, 가족 식사는 토요일에 식료품 장보기와 묶어서, 일요일은 교회. 뭐 이런 식으로 큰 토막을 쳐놓으면 시간의 크기는 다소 작아져 보인다.
오늘은 주간 토막에 한 가지를 더했다. 목요일 점심 먹고 난 후 한 두 시간 거리의 포구 드라이브를 하는 일이다. 먼 여행은 부담스럽고 늘 바다는 보고 싶으니 일주일에 서너 시간 들이면 합리적 절충이 될 터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시간을 잘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토막내 쓰고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빈 집에서 그저 막연히 불안한 나를 시간이 조각조각 몰아붙여 평생 학습시켜온 제 방식으로 나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생각. 넋 놓은 자유를 죄악이라 내 귀에 고함지르는 시간이란 오래된 지배자. 나는 모처럼 도착한 이 자유의 세상에서조차 저 모진 제국주의자 시간의 규율을 스스로 만들고 그 안으로 분열된 채 기어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눈 앞에 붙어 있는 일간 계획, 주간 계획표 노란 포스트잍을 뗐다. 시간 속에 나를 그냥 내던져 둬보자. 이놈이 내게 무슨 짓을 하는 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은 월요일 오전, 집에서 퇴고를 해야 할 시간.
그냥 다 덮고 음악이나 좀 들어보자. 이 놈이 뭐라 하는지.. 오전 10시 30분. 드비쉬의 달빛 연주가 막 끝났다. 녀석이 살짝 당황하는 표정으로 찰칵 숫자를 바꾼다. 10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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