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떠난 이에게 건네는 축하

취몽인 2020. 11. 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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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에게 건네는 축하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일이다. 오십 며칠을 채웠다면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여든여덟 축하를 드렸을 것이다. 주말에 담글 김장 이야기를 나누며. 그 두 달 남짓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신 어머니의 생일은 이제 아무도 축하하지 않는다. 그저 맏이인 탓에 관성처럼 기억을 하고 있는 나만 빈 집을 생각하고 있을뿐.

  죽은 이의 생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태어났으니 죽을 수 있다는 자각 같은 정도인가. 하지만 그 거리가 이처럼 가까울 때는 좀 난처하다. 거리는 나를 낳아준, 한 몸이 분열된, 또다른 내가 어머니라는 혈육의 거리도 있고 불과 얼마전까지 찾아가면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전화를 걸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다는 시간의 거리도 있다.

  실감이라는 말이 있다. 며칠 전 꿈에 어머니가 다녀갔다. 큰 딸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를 보고 설핏 웃으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익숙한 그 웃음은 이제 없다. 염습을 할 때 억지로 만들어 놓은 어머니의 차가운 미소도 없다. 그게 불쑥불쑥 나를 난처하게 한다. 어디로 갔는가. 그 미소는. 실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실재는 실감과 다른 것이다.

  어쨌던 오늘은 어머니의 생일이다.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이가 태어났던 날이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여기에 없었을, 실존의 기념일이다. 어디 강가에라도 나가야겠다. 요란하게 떠나는 가을을 보고,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이나 보면서 멈춰버린 시작을 축하해야겠다. 또 먹먹하다. 실감은 늘 느리다.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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