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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다시 이 책을 읽는다.
그때는 어려웠다.
지금은 좀 더 많이 이해하길 기대한다.
'詩는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으로부터 도피함으로써, 관계 맺고자 하지 않음으로써, 거리를 둠으로써, 그 결과 전 시간적이고 전방향적인, 우주적인 접촉을 시도한다. 스스로 멀어짐으로써, 타자의 이해를 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 인간과 자연,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이고 내밀한 소통을 하는 것이 詩이다. 이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소통이다. 詩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로의 소통을 겨냥한다면, 사실 그것은 웅변이나 논설보다 지리하고 효과도 떨어진다. 또 소통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다면 그것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일정한 그룹이나 소수의 구성원들과의 심리적, 계약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이며, 소통의 내용도 기성의 감각이나 가치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피상적인 소통이 아니라, 소통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오히려 소통의 어려움을, 그 한계를 일깨우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저 깊숙한 곳에서 소통은 열리게 된다. 언어가 지고있는 의미 전달과 교류의 짐을 내려놓을 때, 언어는 본래의 파동을 되찾을 수 있다. 詩는 언어를,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고, 지시로 고착되지 않는, 생기 가득한 파고를 지닌 탄생의 순간으로 되돌려놓는다. 詩는 언어에게 불확정성이라는 뜨거운 권리를 부여한다. 언어는 본래 자신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자유의 과잉을 누리게 된다.'
'사물의 미지에 눈뜨기 위해, 나는 나를 벗어나 고양이에 주목하고, 고양이의 움직임을 뒤쫒고, 고양이에 의해 사라진다. 내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고양이가 나를 차지하는 것, 시적 대상이 시인을 삼켜버리는 형식이 내가 생각하는 시의 형식이다. 사물은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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