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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竹
습자지처럼 얇게 쌓인 숫눈 위로
소쿠리 장수 할머니가 담양 오일장을 가면
할머니가 걸어간 길만 녹아
읍내 장터까지 긴 墨竹을 친다
아침해가 나자 질척이는 먹물이
눈 속으로 스며들어 짙은 농담을 이루고
눈 속에 잠들어 있던 댓이파리
발자국들도 무리지어 얇은 종이 위로 돋아나고
어린 나는 창틀에 베껴 그린 그림 한 장 끼워놓고
싸륵싸륵 눈 녹는 소리를 듣는다
대나무 허리가 우지끈 부러지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씩만,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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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의 첫 시집.
아버지가 참 많다. 가난한 집과 사람들이 많다.
처음 보는 고운 우리 말도 많고
설움도 정겨운 풍경도 많다.
첫 시집이어서일까,
끝이 괜히 무겁거나 깃털이 달린 詩들도 보인다.
내 반성이 비친다.
-손택수. 창비시선.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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