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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노인은 눈을 감지 않고 있었다
편지함에서 떨어진 우편물처럼
마당 바깥쪽에 낮게 엎드린 노인은
왼팔의 극히 일부만을
파란 대문 안쪽에 들여놓은 채 싸늘하게 굳어져 있었다
노인의 오른팔에 쥐어진 검정봉지엔
비틀비틀 따라왔을 술병이 숨막힌 머리를 겨우 쳐들었다
처마 밑에는 누군가 보내준 굴비 한두름이
대문 틈 사이로 밀려지던 손가락을 지켜본 듯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각지에서 내려온 핏줄들이 술렁이는 동안
노인은 마당 밖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야 했다
집밖에서 일어난 일이라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노인 옆에 있던 무전기가 반복해서 말했다
부검된 노인이 방안으로 옮겨지기 전부터
흑백사진 앞에 나란히 뉘어지던 굴비는
뜬눈으로 조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잔치 내내 생볏짚을 먹어야 했던 암소가
트럭에 실려나간 뒤 대문이 닫혀졌고 노인처럼
헛간으로 아무렇게나 버려지던 태우다 만 목발 하나,
밤마다 절름절름 빈 마당을 돌았다
조기는 굴비가 되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
석쇠에서조차 눈을 치켜뜨고
세상 조여오던 그물을 온몸으로 기억해낸다.
-박성우 <거미> 2002. 창비시선 219.
2000년 12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나온 창비시선 201부터 299까지의 시집 중에서 한편씩을 골라 엮은 창비시선 300번. 그 98편 중에서 내가 고른 박성우시인의 詩 한편.
한편씩 골라 실린 詩들은 거의 다 읽은 詩들이다. 제법 부지런히 읽었구나 싶다. 창비에서 10년동안 100권 정도의 시집 밖에 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좀 의아하다. 일 년에 열 권. 세상에 시인이 오만명이라는데.. ㅎㅎ 좀 더 많은 시집을 펴내는 것이 창비의 사명 아닌가 싶다. 마케팅은 집어 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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