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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 동안 깊이 생각함
이제는 아주 작은 바람만을 남겨둘 것
흐르는 물에 징검돌을 놓고 건너올 사람을 기다릴 것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
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갈 것
저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이 없을 것
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을 반절 접어둘 것
- 문태준 . 2012. 창비시선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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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은 텅빈 시간의 풍경 속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유홍준은 시간의 한 토막 속에 새겨진 고통을 녹슨 못 끝으로 그리고, 황동규는 조용히 흐르는 풍경의 끄트머리에 서서 어느 속의 말을 무심하게 꺼내고, 윤제림은 나무 그늘에 느긋하게 앉아 그림자의 농담을 툭 그린다. 문태준은, 앞 마당에 깃드는 모든 우주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모조리 詩로 만드는 슬픔의 청부사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구석구석에서 각기 빛나는 푸른 별들이다.
그런데 왜 유난히 어머니 목소리가 자꾸 들리나.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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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름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 하신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원뢰遠雷 같은 부름
나는 기도를 올렸다
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
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달라고
옛 성 같은 어머니가
내 딛는 소리로
밥 먹자,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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