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첫 집

취몽인 2020. 12. 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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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집

엄동설한에 화장실 수리한다고 해서
강아지랑 큰 딸집으로 대피.

35년전. 대학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해서
처음 독립살이를 위해 얻은 집은 이대앞 염리동 언덕받이에 있는 세탁소집 문간방이었다. 화장실도 주방도 없는 방문 열면 바로 대문이고 연탄 아궁이 하나 달랑 있던 그 방 생각이 난다.
주인 아저씨 이름이 임재덕. 나하고 이름이 같아 밤에 친구들이 대문 밖에서 날 부르면 아저씨가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는 그 집, 그 방. 옆 방에는 술집 나가는 아가씨와 소매치기 남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사는 동안 단 한 마디 말도 서로 나눈 적 없었다.

임대 행복아파트지만 반듯하게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독립한 삶을 살고 있는 딸 집에 종일 누워 있으니 그 시절 생각도 나고 바뀐 형편 생각도 난다.
내가 뭘 도와준 건 없지만 그래도 좋은 회사 취직하고 제 힘으로 아파트 구해 사는 딸의 인생은 어쨌든 그 시절 내 삶보다는 훨씬 낫다.

그 힘에 엄마 아빠의 작은 보살핌도 있었겠거니 생각하니 인생 뭐 크게 잘못 산 것 같지는 않다. 뻔뻔한 생각인가?

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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