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허수경

취몽인 2021. 1. 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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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도장

 

 

꽝!

그리고 저 온몸 도장

부딪힌 쪽이 더 선명하고 부딪칠 때 머리를 돌린 흔적까지 있는

유리창에 찍힌 새의 온몸 도장

새는 뇌진탕으로 추락했을까,

마당에 나가본다

 

없다, 새는, 고양이가 금방 다녀갔나

없다, 온놈 도장은 있다

없다, 유리창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제삼의 세계가 존재하나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새는 온몸 도장을 찍었나

 

마당에는 빛만 가득하다

빛 속으로 온몸 도장마저 끔찍하게 사라진다

유리창에는 내 그림자만

검은 온몸 도장 같은 내 그림자만

 

사라지자!

끔찍하게 저 도장너머로

 

그런 다음 무얼 하지?

아직 마당엔

빛의 연기가 하얀데

빛의 향기만이 멈추어 섰는데


-허수경
2016.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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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절에
멀리서 먼저 떠난 시인이 남긴
詩를 읽는 일은 힘들다.

시인은 시시껄렁하게 살고싶다 했지만
정작 詩는 집요하게 살고있다.
그래서 '살고싶다' 했겠지.

창밖은 온통 흐리고
오전 내내 모니터를 들여다 본 뒷목이 아프다.

괜히 詩를 읽었구나 싶은 날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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