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느닷없음에 대하여

취몽인 2021. 1. 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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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음에 대하여

묵상 후
연필부터 뾰족하게 깍고
하루를 시작한다.
날카로운 연필심은
詩 몇 편 위에 무뎌질 것이다.
한번도 못봤지만
가깝게 느꼈던 한 사람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느닷없는 이별이 잦다
그 느닷없음 어쩌면
항상 곁에 있는지 모른다
연필이 하루하루 짧아지듯
한걸음씩 다가오는 느닷없음
아침이 왔으니
저녁도 오기 마련이지만
뒤돌아볼 틈도 없이
누군가 사라지는 일은 황망하다
오후엔
미뤄뒀던 치과엘 가야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니
계단을 걸어서
갈 때 가더라도 밥은 먹어야 하니
몇 달치 수입을 끌어당겨서
이빨을 고칠 생각이다
본전 생각이 간절하면
느닷없는 놈도
형편을 좀 헤아리겠지 하면서

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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