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선산

취몽인 2021. 3. 2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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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사진 둘.
첫번째 사진은 중학교 1학년때
두번째 사진은 아마 국민학교 입학 전.

한 번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큰아버지, 아버지, 사촌들과 함께 찍은 참 오래된 사진들이다.

그래. 나도 선산이 있다. 김해 김씨 삼현파 자남세가 자손이다. 저 곳 화원 마비정 산자락에는 내 중시조부터 사진 속 큰아버지까지 잠들어 계신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없다. 세상 떠난 부모 형제, 그리고 조상들이 잠든 저 산에 같이 있지 못하고 삼십분 떨어진 낯선 교회 묘지에 홀로 계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는 크리스찬. 큰 집은 아니다. 큰집의 안위를 위해 다른 신을 섬기는 가족은 선산에 들지 말았음 좋겠다는 어떤 분의 신념(?)이 있었다. 그러고 40년. 그 사이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 완곡한 거절의 신념은 지독히 반목했던 세대를 이어 여전하다.
섭섭한 마음 없지 않다. 그러나 신념은 상대적으로 강한 사람이 우선이다. 큰일 날지 모른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뭔 큰 일은.. 이라 생각하는 사람의 의지는 의미 없는 것.

결국 아버지는 저 곳에 가시지 않는다. 나도 가지 않을 것이다. 선산이 오지 말라 하니 우리는 가지 않을 것이다.

저 곳, 저 사진 속 내 가족들. 누가 우리를 자꾸 멀리 떼어놓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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