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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면과 수육 한 점
어제 이빨 본 뜨러 범계에 갔다가 볕이 좋아 친구와 밀면 생각이 났다. 전화를 걸어 친구를 부르고 좀 일찍 도착해서 아트센터 앞마당에서 한참 봄꽃과 햇살 맞이를 했다.
마춤하게 도착한 친구와 먼저 당구 한 게임 치고 오니 길게 줄섰던 밀면집 점심 손님들이 한바탕 빠져나갔다. 밀면 먹어본 지가 한 오 년 정도 된 것 같았다. 회포도 풀겸 과감하게 물밀면 곱배기를 시켰다. 그새 미안한 인사와 함께 밀면 값이 천 원 올랐다. 당구를 내가 이겨 밀면 값을 치를 친구에게 살짝 미안했다. 그래봤자 그것도 천 원이지만..
한참 기다려 나온 밀면은 시원 푸짐했다. 삶은 계란 밑에 돼지고기 수육 두 점. 빨간 양념과 살얼음 속에 탱탱한 밀면 가닥들.
식초를 조금 치고 잘 섞다 수육을 집었다. 난 물에 빠진 돼지고기를 싫어한다. 아무 생각 없이 맞은 편 친구의 그릇에 수육을 넣어줬다. 순간 버럭, 역정이 날아왔다. 왜 물어보지도 않고 내 그릇에 네 음식을 집어넣느냐. 그런 무례함이 나는 너무 싫다며.
제법 당황스러웠다. 이게 버럭할 일인가 싶었지만 금방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참 많은 술과 밥을 함께 한 사이지만 친구가 무엇을 싫어하는 지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물론 아는 것도 있다. 늘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친구. 내가 아무리 이차를 가자 꼬드겨도 단호히 돌아서 집으로 가곤 하는 친구니까.
수육을 반찬 그릇에 끄집어 내놓고 우리는 말 없이 밀면을 먹었다. 보통을 시킨 친구보다 곱배기를 시킨 내가 한참 더 걸려 다먹었다. 시원은 했지만 맛은 그저 그랬다. 마음 탓도 있었을 것이다. 버럭한 친구 탓이 아니라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나를 만난 탓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내 그릇의 수육을 함부로 가까운 사람들 그릇에 집어넣었을까? 사랑, 배려, 이해 같은 말을 뻔뻔하게 중얼거리며. 그 버릇 없는 수육의 침공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묵묵히 감당했을까? 가깝다는 이유로. 정작 생각해보면 내 그릇에 누가 수육을 집어 넣으면 질겁을 할게 분명하면서.
어쨌던 밀면 곱배기를 국물까지 거진 다 비우고 나니 배가 엄청 불렀다. 친구는 여전한 표정으로 빙긋 웃고 있었고 허옇고 두툼한 수육 두 점은 저 혼자 영문을 모르고 빈 그릇에 드러누워 있었다.
벚꽃 몇 점 창밖에서 기웃거리고..
210326
밀면과 수육 한 점
어제 이빨 본 뜨러 범계에 갔다가 볕이 좋아 친구와 밀면 생각이 났다. 전화를 걸어 친구를 부르고 좀 일찍 도착해서 아트센터 앞마당에서 한참 봄꽃과 햇살 맞이를 했다.
마춤하게 도착한 친구와 먼저 당구 한 게임 치고 오니 길게 줄섰던 밀면집 점심 손님들이 한바탕 빠져나갔다. 밀면 먹어본 지가 한 오 년 정도 된 것 같았다. 회포도 풀겸 과감하게 물밀면 곱배기를 시켰다. 그새 미안한 인사와 함께 밀면 값이 천 원 올랐다. 당구를 내가 이겨 밀면 값을 치를 친구에게 살짝 미안했다. 그래봤자 그것도 천 원이지만..
한참 기다려 나온 밀면은 시원 푸짐했다. 삶은 계란 밑에 돼지고기 수육 두 점. 빨간 양념과 살얼음 속에 탱탱한 밀면 가닥들.
식초를 조금 치고 잘 섞다 수육을 집었다. 난 물에 빠진 돼지고기를 싫어한다. 아무 생각 없이 맞은 편 친구의 그릇에 수육을 넣어줬다. 순간 버럭, 역정이 날아왔다. 왜 물어보지도 않고 내 그릇에 네 음식을 집어넣느냐. 그런 무례함이 나는 너무 싫다며.
제법 당황스러웠다. 이게 버럭할 일인가 싶었지만 금방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참 많은 술과 밥을 함께 한 사이지만 친구가 무엇을 싫어하는 지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물론 아는 것도 있다. 늘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친구. 내가 아무리 이차를 가자 꼬드겨도 단호히 돌아서 집으로 가곤 하는 친구니까.
수육을 반찬 그릇에 끄집어 내놓고 우리는 말 없이 밀면을 먹었다. 보통을 시킨 친구보다 곱배기를 시킨 내가 한참 더 걸려 다먹었다. 시원은 했지만 맛은 그저 그랬다. 마음 탓도 있었을 것이다. 버럭한 친구 탓이 아니라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나를 만난 탓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내 그릇의 수육을 함부로 가까운 사람들 그릇에 집어넣었을까? 사랑, 배려, 이해 같은 말을 뻔뻔하게 중얼거리며. 그 버릇 없는 수육의 침공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묵묵히 감당했을까? 가깝다는 이유로. 정작 생각해보면 내 그릇에 누가 수육을 집어 넣으면 질겁을 할게 분명하면서.
어쨌던 밀면 곱배기를 국물까지 거진 다 비우고 나니 배가 엄청 불렀다. 친구는 여전한 표정으로 빙긋 웃고 있었고 허옇고 두툼한 수육 두 점은 저 혼자 영문을 모르고 빈 그릇에 드러누워 있었다.
벚꽃 몇 점 창밖에서 기웃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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