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이사와 독립, 그리고 다음

취몽인 2021. 3. 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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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와 독립, 그리고 다음

33년만에 내 방이 생겼다.

결혼 후 아내와 단칸방을 함께 써왔고 집을 넓혀도 자라는 아이들 방 한 칸씩 마련해주느라 내 방은 따로 없었다. 제일 큰 방에 침대와 책상을 나란히 두고 살았다.

이제 아이들이 다 독립하고 지들 짐들을 정리하면서 어제 방 하나를 비워 내 방으로 삼았다. 책상을 옮기고, 베란다 구석으로 쫒겨나있던 책들을 다시 불러들일 책장을 주문했다. 휴일 종일 이 방 저 방 가구를 옮기고 바리고 하느라 아내도 나도 몸살이 났지만 미뤄둔 일을 마치고 나니 속은 시원하다. 옮긴 방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강아지가 '너 왜 거기 있어?' 하는 눈치로 어리둥절하다.

이 봄 우리 가족에겐 이사가 많다. 어제 내가 방 옮기는 이사를 했고, 다음 주말은 돌아가신 양친이 이사를 한다. 4월말, 5월초는 두 딸이 이사를 한다. 대이동이다. 이동뿐만 아니라 굳이 의미를 둔다면 세대별로 한 시절을 정리하고 다음 시절로 접어드는 특별한 의미의 시기인 셈이다.
모두의 앞날이 부디 행복하기를..

아내는 내 방을 굳이 서재라 말한다. 내 오럔 바램을 아는 탓이다. 버거웠던 지난 시절 책 사치를 부리는 남편에게 퉁박도 많았지만 마음 속에 지 좋아하는 걸 못해주는 미안함도 있었으리라. 이제 늘 우선 순위에 있었던 아이들 삶이 아내의 보살핌을 덜 필요로 하게 됐으니 내게도 차례가 돌아온 것인가? ㅎㅎ.

어쨌든 내 방에 앉아 내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늘어놓고 있으니 좋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든다. 아내는? 차례 관계 없이 세 식구를 챙기기만 해온 아내는? 아내의 차례는 언제이며 무엇을 해야하나?
제 방 생겼다고 안 그래도 따로 놀아온 내가 아내를 더 외롭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데,,

아내의 행복한 독립은 어떤 것일까?
뭘, 어떻게 해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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