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고방庫房의 기억

취몽인 2021. 4. 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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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庫房의 기억

사보이극장에서 서문시장 가는 길
시장 맞은 편으로 고방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고모부와 화숙이 아버지는 늘 그곳에 있었다
밭떼기로 사 도매로 넘기고 남은
다마네기나 배추, 고추 같은 것들
한 철에 딱 한 가지씩만 찍어 선금 지르고 샀지만
고모부가 사면 다마네기는 꼭 폭락했다
한 철 벌어 일 년 살 궁리는 자주
한 철 까먹고 일 년 빚지는 꼴이 됐다
그때마다 아이만 하나씩 늘어 벌써 일곱
고모부는 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배추로 그나마 몇 푼 번 화숙이 아버지 곁에서
쓴 소주만 얻어먹곤 했었다
가게는 가게인데
물건은 없고 먼지와 가난과 사각의 허방만 있던
대신동 고방들
마른 다마네기 껍데기 같던 고모부도
시퍼런 배추 겉잎 같던 화숙이 아버지도
이젠 다 메꿔져 사라졌고
그 길엔
당시에도 유일하게 번쩍이던 신광소리사 자리를
엘지전자 대리점이 차지한 것 빼곤
이제 먼지조차 번쩍거린다
참 오지게 재수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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