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마산

취몽인 2021. 8. 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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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페친들 중에 굳이 아는 척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 중 몇 분은 경남 서부에 계신 분들이다. 송구한 마음이 많다. 그리고 괜히 뻔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1984년 12월, 봉두난발의대학 졸업을 앞두고 시절이 좋아 취직이 됐었다. 마산에 본사를 둔 한일합섬이었다. 새마을연수원 근처의 연수원에 들어가 한 달 연수를 받고 새해 1월 4일인가부터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한일합섬의 본사는 양덕동 공장이었으니 서울사무소 근무를 한 셈이다.

당시 대졸 신입사원의 직급은 계장이었다. 신입사원이 계장이라니? 나중에 마산 본사에 출장을 와서 알았다. 당시 한일합섬 총 직원 수는 거의 수 만 명. 대부분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이 직원. 그 위에 관리자가 주임, 그리고 대졸 사무원이 3급 계장이었다. 직선 계열로 따지면 내 밑으로 2만명의 부하 직원이 있는..

여하튼 신입 쫄따구 주제에 어쩌다 마산 본사 출장을 가면 상전 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당시에 내 소속은 회장 비서실 직속 기획조정실이었으니.. 아버지 또래의 대리 과장님들이 마산 일대를 휘저으며 술을 샀다.
내게 마산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보다 더 대접 받는 곳.

물론 오래 못갔다. 6년쯤 다니고 본격적인 광고바닥으로 옮겼다. 그래도 평생 마산은 내 전성기로 남아있다. '합포의 너른 들판 눈부신 일터..'로 시작되는 사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돌이켜보면 사실 미안하기 짝이 없는 마산이다. 한 때 마산 전체 물 사용량의 20%를 썼다는 양덕동 본사 땅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내 광고경력에 중요한 수상 실적을 안겨줬던 한일여실고 팔도잔디는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다. 어렴풋이 내 입사동기가 오랫동안 교장을 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각설하고, 그래서 그 동네 페친들이 고개를 끄덕여주시면 마음이 유난해진다. 마산항 근처에서 재피 가루인지 산초가루인지를 넣은 해장 매운탕을 먹는 기분이 든다.

조만간 꼭 마산을 갈까한다. 저녁마다 바쁘시다는 시인분도 뵙고싶고, 그 동네 토박이라는 잘 생긴 시인도 뵙고 싶고, 좀 떨어진 고성에 계신 분도 부르고 싶고.. 하동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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