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팔월

취몽인 2021. 8. 29. 22:00
.
팔 월


입추.
서쪽 바람 불어온다.
아무 말도 하기 싫은
하루가 지난다

*

한 석 달
내던져놨더니
詩란 놈이
눈치보며 기웃거린다.
그때
그녀에게도
이랬어야 했나

*

여름 식어간다
어깨, 무릎까지 식었다
겨우
책의 체온이 됐다

*

누군가
빨간 줄을 친 詩에서
빨간색을 지웠다
살아남은 詩가 희미하다

*

비싼 무인도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불가사의하게 하루가 짧다

*

절반,
실망과 희망이 같이 걸린
빨랫줄 같은 곳

*

사람의 발고로
사람을 미워한다
발고한 사람도 밉다

다 사람인데

*

모기 한 마리
며칠째
발목을 노리고 있다

*

친구에게
詩는 그저 느끼면 되는 거야 라고 말하고 나니
詩가 고개를 푹 떨궜다

*

비가 먼저 와
올 수 있었던 사람은 출발하지 않았다
나의 일이 아니다

*

나는 당신을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럴 수 없다

*

부르지 않는 詩는
가슴 아프게 쓰고
헤프게 웃는 時調는
도장 찍듯 쓰는 하루

*

休暇

모두 돌아왔으니
나도 떠날 때

*

열두 시간 잠에서 깨어
백 편 꿈을 생각한다
참 번다하게 죽어가고 있구나

*

날뛰는 놈을
제자리에 앉히는 일
사는 건 그뿐

*

더러는
시간에 붙들려
대책없이 썩는다

*

새삼스럽지도 않구나
일터에서 네 권 책 읽기
불안의 종류만 다르구나

*

이틀 남았지만
지겨웠던 팔 월
마음대로 미리 끝낸다

나의 내일은 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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