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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과 알레고리

취몽인 2021. 11. 15. 16:23

상징과 알레고리는 모두 작품 안에서 감각적인 것을 통해 초감각적인 것을 논한다. 그러나 상징은 독자적이고 지시할 수 없으며 알아서 이루어진다. 작품 안의 요소들이 의도적이지 않게 맞물려지며 감각적인 대상으로 초감각적인 대상을 이야기한다. 반면 알레고리는 의도적이며 지시적이다. 알레고리는 의도로 시작된다. 의도적으로 작가는 초감각적인 대상을 논할 감각적 대상을 선택하고 시작한다. 따라서 상징은 시 안에서 태어나지만 알레고리는 시 바깥에서 태어난다. 상징은 특수한 것 속에서 보편적인 것을 보지만, 알레고리는 보편적인 것을 위해 특수한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상징의 감각적 대상과 초감각적 대상은 통일되고 현상과 본질의 관계로 왜곡된다. 감각적 대상이 현상이고 초감각적 대상은 본질이라 오해하지만, 초감각적인 것이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인간이 만든 사후개념이지만 초감각적인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초감각은 이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신학적인 그것들이다. 초감각적인 것이 본질적이라는 이러한 오해는 초감각적인 것은 좋고, 옳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낳았고 낭만주의에서 상징이 팽배하게 된 근거가 된다. 이부터 상징은 몰락을 이상화하고 자연을 자연 그대로가 아닌 변용케하고, 그 변용된 자연의 얼굴이 구원의 빛 속에서 순간적으로 계시된다. 상징은 헛 것이다. 작품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맞물려 생성되기에 순간적이고 헛 것인 것도 맞지만, 몰락을 몰락 그 자체가 아닌, 이상적으로 포장하고, 변용된 자연의 얼굴을 구원의 빛이라 포장하는 헛 것이다. 이상은 보편적인 것들의 합이 아니기에 대상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공통의 특징을 뽑아낸다고 해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상은 순간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알레고리는 원초적이다. 헛 것이 아닌 현실이다. 불멸성과 영원성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망각과 지워짐이 뒤따르는 현상이다.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이며, 불편하다. 감각적 대상과 초감각적 대상 사이의 필연성이 보편성을 전제로 존재해야 하는 상징과 달리, 알레고리에서는 본질은 물론 보편성 또한 전제하지 않는다. 오직 나에게만 다가오는 감각대상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보편성인 신 중심의 중세 인식과 달리 16~17세기는 기독교의 위신이 붕괴되며 절대적 보편성또한 무너졌다. 이와 함께 보편성을 전제로 하는 상징은 더이상 쓰여질 수 없었다. 예술가들은 의미화를 위한 비유를 생성해내지만 절대성 없는 비유, 본질을 말할 수 없는 비유는 낮은 차원에서만 반복되는 의미화의 연쇄작용일 뿐이었다. 이 단계가 바로 알레고리이다. 기존의 절대적 의미, 규범, 가치관이 붕괴되는 몰락기의 언어 형식이다.

상징은 아름답지만 알레고리는 적나라하다. 상징은 한번 높이 평가를 받은 작품을 둘러싸고 모여든 관중이 그에 대한 습관적 믿음으로 불 밝히는 마술 환등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의 사랑만을 떠올리지만 실제의 예수는 고통스런 삶을 통과한 인물이었다. 상징은 번쩍이는 도심의 불빛이지만, 알레고리는 불꺼진 골목의 더러움이다. 세계는 상징만으로, 혹은 알레고리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추함. 상징과 알레고리 모두가 존재한다. 이 세계에 아름다운 상징만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우울해진다. 그러나 세계에는 원래 우울도 존재한다. 그냥 그런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우울이라는 것도 존재했다.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알레고리는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보여줄 뿐이다. 설명은 설명대로 삶을 단정지어 버린다. 삶의 여분의 가능성을 봉쇄한다. 따라서 알레고리는 파편화될지라도 보여주기를 택한다. 진정한 삶은 설명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삶은 파편화되어 보여질 뿐이다.

- 시 수업때 들은 상징과 알레고리 내용이 인상 깊었다. 곱씹고 또 곱씹고 싶은 내용이다.

- (Benjamin,독일 비애극의 원천, 한길사) 그리고 수업 자료

[출처] 상징과 알레고리|작성자 KA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