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십일월

취몽인 2021. 12. 7. 08:30
.
십일월


*

태초 이래
나고 죽은 생명들이
내 숨결을 드나드는 걸 느끼는 일

*

묵은 친구를 만나는데
자꾸 떠오르는 반성
살아온 지난 날이 모두 두려움

*

금요일

일주일이 지쳐
긴 하루가 미리 목놓는 시간

*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택시를 탈 수 있고
밥을 사먹을 수 있는 형편

가을에
침묵할 수 있는 형편

*

최근의 측은은
모든 강아지에 닿아있다.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텔지아
불타는 도미니끄를
벌떡 일어나 바라보는 세퍼드

그 측은
죽음보다 더한 사랑의 측은

*

아내의 생일에

이젠 좀 과하게도 살자
마음 먹는다.

*

늘 그런
첫눈이 섭섭하게 왔다.

강아지를 혼자 집에 두고 나서는 길
무겁다.

*

어머니 아버지와 바다에서 헤어질 때
타고 남은 두 분
한 점씩 가져올까 했던 생각
구차하다는 생각

지금 어느 바다를 흐르고 있을까

*

낮에 잠을 잤다.
다섯 시간이나

밤이 말한다.

너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

떠나는 생각이 잦다

곁에 있는 존재들에게
미안함을 줄여야 할 시간이다

*

잔칫날 자빠지지 않으려
발목을 부여잡는다.

그 뒤는 어찌 되던지

*

詩는
내게서 떠난다

불구의 몸으로

*

눈 앞의 하루가
멀다

*

일주일째
코에서 나는 시궁내

바야흐르 나는 썩는 중인가?

*

딸의 결혼식에
축시를 읽는 일

속옷 바람으로 거리에 나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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