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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는 한강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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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밈둘레나 쑥니풀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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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좀 지났을 무렵
미당은 나와 한 동네에 살았다.
미당이 있어 예술인마을이었을까?
노인은 수협 다니는 젊은 친구와 시장통에서 가끔 막걸리를 마시곤 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노인은 그저 노년이 심심한 노인이었다.
아무 말이나 해도 시가 된다던 시인은
키큰 목련이 서있던 높은 담장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오늘 아침 오래된 시 한편을 읽으면서 입가에 묻은 막걸리를 손으로 훔치던 시인의 드센 눈매가 떠올린다.
시인은 죽어도
시 속에서 언 강물을 풀어놓고
무어라 풀리는가
자꾸 묻는다
풀리는 한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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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밈둘레나 쑥니풀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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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좀 지났을 무렵
미당은 나와 한 동네에 살았다.
미당이 있어 예술인마을이었을까?
노인은 수협 다니는 젊은 친구와 시장통에서 가끔 막걸리를 마시곤 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노인은 그저 노년이 심심한 노인이었다.
아무 말이나 해도 시가 된다던 시인은
키큰 목련이 서있던 높은 담장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오늘 아침 오래된 시 한편을 읽으면서 입가에 묻은 막걸리를 손으로 훔치던 시인의 드센 눈매가 떠올린다.
시인은 죽어도
시 속에서 언 강물을 풀어놓고
무어라 풀리는가
자꾸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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