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봄의 생일

취몽인 2022. 4. 7. 12:48

봄의 생일 - 봄의 생일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우리 집 용어를 빌리면 봄 생일이다. 음력 3 7. 좋은 봄날에 태어났다.

 

  아내는 생일이 또 한번 있다. 양력 11 7. 주민등록상 생일이다. 나와 결혼한 이래 공식적인 생일로 챙기는 날이다.

 

  비정상에는 늘 사연이 있다. 멀쩡히 국립대 상대를 나와 대기업에 턱하니 입사를 한 잘난 아들이 어느날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 맏딸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경악했다. 그러나 자식을 이길 재주는 없고 결혼을 시킨 후 어머니의 뒤끝은 매섭고 오래 갔다.

 

 나는 9월이 생일이다. 마뜩치 않은 며느리가 아들하고 동갑인 것도 싫은데 생일도 더 빠르다. 마침 그 며느리 주민등록 생일이 11월이다. 앞으로 네 생일은 11월로 해라. 남편 앞서는 건 좋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아내의 생일은 강제로 바뀌었다.

 

  그 폭력을 내가 막지못한 이유는 지금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귀찮았으리. 생일 강제 이동에 대해 아내는 별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속으론 속상했겠지만. 어느 해인가부터 그 사실이 좀 불편해진 나는 아이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사실을 밝히고 사과했다. 생일을 원래로 돌리자고 했다. 의외로 아내가 반대했다. 별 의미 없는 일이며 괜히 어머니와 불편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했다.

 

  어쨌던 그해부터 나는 아내 봄 생일을 챙겼다. 작은 선물이라도 했다. 물론 가을 생일도 챙겼다. 공식적으로. 가족 외식이나 케잌 점화 같은 것은 가을 생일날 했다.

 

  그러다 년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내는 많이 울었다. 애증, 회한 뭐 이런 감정의 단어로 흐른 눈물이었을 것이다. 평생 인정받지 못한 시어머니의 죽음은 어떻게 생각하면 해방의 시작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35년이란 세월은 나름 더께가 쌓여 슬픔이 앞서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아내의 가을 생일은 없애고 봄 생일을 되찾자 말했다. 아내는 다시 거부했다. 이번에도 별 의미없는 일이란 이유와 함께. 오히려 약식으로 챙겼던 봄 생일을 완전히 없애자고 했다. 일종의 낭비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아내의 봄 생일은 애매한 날이 되고 말았다.

 

  순치라는 말이 있다. 아내는 어머니의 폭력에 순치된 것일까? 제 생일을 챙기지 못했던 비겁한 남편의 젊은 날을 상기하는 장치로 남겨두고 싶은 걸까?

 

  아침에 큰딸이 엄마 봄 생일이네. 축하해요. 하는 톡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이젠 어른이 된 아이들도 기억하는 오래된 부조리. 아내의 봄 생일이다.

 

 그리고 벚꽃 필 때마다 내게 반성을 요구하는 봄의 생일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아내의 명령을 어떻게 어겨야할까?

 

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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