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왼쪽에서 비롯되었는가?
변변치 않은 시집을 한 권 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묻는 사람들이 좀 있다. 왜 시집 제목이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 인가? 모름지기 시집 제목이란 시집 전체 또는 시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일 거라고 짐작하는데 이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일 클 것이다.
스스로 좌빨아라는 고백인가? 하는 의심이 제일 클 것이다. 보수 꼴통의 도시 내 고향 친구들의 경우는 거의 그렇게 단정하고 있는 것 같다. ^^ 그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 내 정치성향은 온건 진보이니 왼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시집 제목은 위의 정체성 대변이외에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으면 좋다. 평생 광고쟁이로 살아온 내가 그걸 모르겠는가? 그 점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그래봤 자 안 팔리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왜 시를 쓰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했다. 지금은 제법 오랜 시간 시를 써왔으므로 그냥 쓰고 싶을 때 쓴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그 근본 동인에 대해서는 답이 되지 못한다. 막연히 내 안의 어떤 결핍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결핍, 내게 그것은 왼쪽이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다. 왼쪽 다리는 약간 짧고 가늘다. 당연히 힘이 없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체육시간에는 혼자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일이 많았다. 달리는 친구들을 보는 일은 참 쓸쓸했다. 그 쓸쓸함이 쌓여 시라는 물꼬에 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맥없는 왼쪽은 그 후로도 많은 불편을 줬다. 가는 다리를 보여주기 싫어 대학생이 될 때까지 공중목욕탕을 가지 않았다. 남들과 함께 걸을 때는 늘 뒤에서 걸었다. 절며 걷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공부는 곧잘 했으므로 학교에서 그리 구박대기 취급은 받지 않았지만 늘 뒤 켠에 있는 있었으니 자연히 책을 가까이했다. 너희들은 몸으로 달리지만 나는 머리로 달리겠다 뭐 그런 아우성도 속에는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런가? 하는 생각은 어딘가로 뛰쳐나갈 방향이 필요했다.
한 갑자 살고 나니 왼쪽은 더 부실해졌다. 하지만 더 이상 결핍이 불행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저 좀 불편할 뿐. 덕분에 책을 좋아하는 삶을 살았고 더불어 잡문이라도 끄적일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운동장을 뛰며 축구를 하고 달리기를 잘 했더라면 내게 시는 없었을 지 모른다. 내게 왼쪽은 그런 바탕이다. 잘 나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끼친 나의 왼쪽. 나는 왼쪽에서 비롯된 것이 맞다. 22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