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는 소리를 키워주는 스피커가 아닙니다.
내게 맞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정밀 의료기기입니다.
하룻밤 봄 세상속에서 외박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작은 딸아이 회사에서 직원들 복지차원에서 제공하는 글램핑 추첨에 당첨이 돼서 온 가족이 휴가를 내고 다녀왔습니다. 아내와 딸들은 이틀씩이나 휴가를 내고 먼저 출발을 하고 저는 센터 문을 마냥 닫을 수 없어서 어제 오후까지 일을 하고 늦게 합류했습니다. 바비큐도 구워 먹고 밤하늘 별 구경도 하고 장작불을 피워 남들 다한다는 불멍도 했습니다. 대형 텐트 같은 글램핑은 좀 어설픈 호텔 같은 느낌이더군요.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혼자 일어나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가족들을 두고 서울로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오늘이 주중휴무일이긴 하지만 오전에 해야 할 일도 있고 휘트니스센터 예약도 되어 있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시집이라고 한 권 펴내고 나니 갑자기 생활이 번잡 해졌습니다. 대단치도 않은 책인데 주변 친구들이 저자 사인을 해서 보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짬짬이 인사말도 쓰고 봉투에 주소도 쓰느라 바쁩니다. 고마운 일이긴 한데 낯선 일이라 영 어색합니다.
오늘 오후에는 며칠 전 찾아오셨던 고객분의 보청기를 착용해드려야 합니다. 양쪽 귀 모두 안 좋으신 분인데 왼쪽에는 벨톤보청기를, 오른쪽에는 소리증폭기를 착용하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소리를 듣는 일이 불편하다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우선 소리 증폭기 사용을 그만 하셔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중에서 업자들이 보청기 대용으로 권하고 있는 음성증폭기는 보청기가 아닙니다. 단순히 귀에 들리는 소리를 키워주는 스피커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난청은 사람마다 유형이 모두 다릅니다. 전음성난청이 있는가 하면 감각신경성난청도 있고 난청도 주파수별로 정도가 다 다릅니다. 보청기는 피팅 과정을 통해 이들 세부 조건들을 모두 고려해서 내 귀에 가장 적합한 소리를 증폭시키고 소음을 관리해서 듣게 해줍니다. 반면 음성증폭기는 이러한 여러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일괄적으로 소리만 크게 들려줍니다. 그렇지 않아도 청신경이 손상된 난청인에게 무조건적인 큰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귀를 더욱 손상시키게 만듭니다. 잠시 소리를 크게 듣기 위해 난청을 악화시키게 되는 것이지요.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그저 업자가 보청기보다 싼 가격으로 음성증폭기를 구입하면 잘 들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구입하시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오실 고객에게 이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깜짝 놀라더군요. 그나마 이렇게 알게 되셔서 다행이란 말씀도 하시고 보청기를 구입하기로 하셨습니다.
보청기는 첨단 정밀의료기기입니다. 의료기기라는 말은 의학적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보청기센터의 전문성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난청은 질병이기 때문에 의료적 처치가 필요하고 보청기는 이런 의료적 처지의 일환입니다. 음성증폭기는 그저 소리를 크게 들려주는 이어폰에 불과합니다. 잘못하면 난청을 크게 악화시켜 청력을 잃게 만들지도 모르는 위험한 스피커라는 사실을 꼭 아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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