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게 눈 속의 연꽃 /황지우

취몽인 2022. 5. 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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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으로 가는 젊은 성자들


전철은 사람을 싣고 서울로 오지만
빈 전철은 사상을 싣고 인천으로 간다
盲人 父子가
내 主를 가까이
를 부르며
내게 가까이 온다
무슨 일이 잔뜩 임박해 있는
우중충하고 무거운 하늘 아래
안양천 뱀풀들이 멀리
하양 아파트 지대로
기어가고
버림받고 더러운 모든 것들이
신성하다
나는 연락하러 그곳에 간다

-황지우<게 눈 속의 연꽃> 문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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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이 된 황지우 시인은
이제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누가 ‘왜 시를 쓰지 않느냐?” 물었더니
‘시는 젊은 사람들이나 쓰는 것이지.’ 라고 답했다 한다.

1990년, 시인은 서른 아홉,
시는 그 무렵에 쓰는 것이 맞는지 모른다.

나란히 두고 읽는 김소연의 시집
그녀의 나이를 나는 모른다.
젊은이는 지났으리라.
그래도 좋은 시를 쓰고 있으니 황지우가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러나
시인은 늙어 시를 쓰지 않아도
시는 이리 멀쩡히 내게 읽히고 있으니
아직도 광주를 분노하고 있으니

쓰건 안 쓰건 시는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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