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는 잘 들리는 귀에 착용하기도 합니다
9월은 시간이 일주일 단위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태풍이 오는가 했더니 추석 연휴가 지나갔고 연휴가 끝나 미뤄뒀던 몇 건의 약속을 치렀더니 어느새 19일입니다. 이제 겨우 열흘 남짓 남았네요. 시간이 이렇게 뭉텅뭉텅 흐르니 매출은 영 시원찮지만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좋을 때가 있으면 안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니까요. 조금 한가한 시간을 맞아 그간 분주했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으로 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청기센터 운영을 하면 생기는 직업병이 있습니다. 언성이 높아지는 증세입니다. 찾아오는 고객들이 난청을 겪고 있는 분들이니 말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분들과 상담을 하려면 자연 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아 같은 말을 두번 세번 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본래 큰 소리로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 고객들과 한 시간 정도 언성을 높여 상담을 하고 나면 지칠 때가 많습니다.
조금 전에는 한 분이 안성에 게신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올해로 아흔이 되셨는데 청력검사를 해보니 양쪽 귀가 모두 고도 난청의 상태였습니다. 난청이 온지 거의 십년이 됐다고 하는데 보청기센터를 처음 오셨다고 하더군요. 보청기를 착용해 드리니 소리는 크게 잘 들리는데 시끄럽다고 하셨습니다. 그간 고도난청의 상태로 지내면서 못 들었던 소리를 들으니 시끄럽게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소리를 조절해 가며 상담을 하는데 아드님과 제가 번갈아 가며 큰 소리로 어머니와 대화를 주고받아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양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아드님이 한쪽만 하는게 좋겠다고 거꾸로 저와 어머니를 설득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머니의 난청 정도는 청각장애등급을 받아 보청기를 국가지원금으로 할 수 있으므로 우선 한쪽 귀만 보청기를 착용해보는 걸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그럼 어느 쪽 귀에 보청기를 할 것인가로 한참 실랑이를 했습니다. 양쪽 귀가 모두 잘 들리지 않는데 형편상 한쪽 귀만 보청기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몇 가지 고려사항이 있습니다. 비교적 난청이 정도가 가벼울 경우는 잘 안 들리는 귀에 보청기를 착용합니다. 하지만 이 어머니의 경우처럼 양쪽 귀 모두 고도 난청일 때는 그나마 잘 들리는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고도난청이나 심도난청의 경우 보청기를 착용해도 어음분별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귀에 보청기를 착용해서 한쪽으로라도 최대한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설명하느라 또 한참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청각장애진단절차를 먼저 밟기로 하고 가셨는데 제가 지쳐 나가떨어졌습니다. ㅎㅎ
잠깐의 상담이고 또 보청기를 끼고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제가 이렇게 힘든데 그간 가족들은 어머니와의 대화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도 어머니는 그러시더군요. 내 나이 구십인데 보청기가 무슨 소용이냐? 보청기로 소리를 잘 듣는 것은 좋은 데 돈 쓰는 게 싫은 어머니. 천상 우리들의 어머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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