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미루나무 가로로 낮아지는 산 가로로 어는 강 가로로 누운 집들 가로로 눈이 내려 세상은 가로로 쌓이고 가로의 들판에 가로로 뻗은 길 가로로 걸어가는 사람들 가로로 찍히는 발자국 세상은 가로로 흐른다 가로의 세상에 똑바로 미루나무 한 그루 세로로 외로워 말라 너 또한 오래된 가.. 詩舍廊/GEO 2011.11.08
달팽이 달팽이 달리다 서다 달팽이 뺑뺑이 집 지고 꽉막힌 저녁의 남태령을 넘는다 앞으로도 구르고 꽁지 빨갛게 옆으로도 구른다 하루 종일 달려도 그저 몇 걸음 또아리로 말리는 등 뒤의 생계 멈춰도 멈출 수 없는 관성 빙글빙글 섞이는 남은 하루 신호는 어김 없고 또 달팽이 달리다 서다 굳.. 詩舍廊/GEO 2011.10.19
피라미 피라미 파르르 느닷없이 던져졌다 과도한 응답에 대한 복수 또는 어긋난 과녁으로 그늘도 아닌 착지의 코 앞 탁한 물빛의 안부들 미늘 없는 빛살들이 비늘 사이사이 꽂힌다 파닥파닥 꺼지지 않는 물결의 기억 아가미 한 입 마다 바닥은 점점 깊어 간다 마지막 갈증을 세고나면 한결 가벼.. 詩舍廊/GEO 2011.09.29
앵두나무 앞뜰 앵두나무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어린 목련이 또각또각 꽃 지우는데 목 떨궈 외면할뿐 여린 손목 담쟁이 어깨를 간질여도 마른 팔로 대꾸가 없다 지난 이 맘 때 무성히 쏟던 붉은 별자리는 어디에도 없고 비껴 든 비비추 깍지 낀 틈으로 기어 오르던 거친 흙의 슬픔은 깊다 가지마다 고개 돌리고 오랜 바람 마저 긋는 침묵으로 너는 어디로 가는지 쏟아진 별빛들 터져 아우성으로 솟는 발치 연푸른 촉소리 들리지도 않는지 *2007년 6월 26일 초고 / 2011년 9월 20일 수정 詩舍廊/GEO 2011.09.20
산딸나무 산딸나무 2011. 6. 9 혹 이 나무의 이름을 아시는 분 계신가요? 오래 전 어느 여름날 싱싱하게 땋은 갈래머리의 그 여학생 여름교복 깃 같이 하얀 새초롬하고 말갛게 재잘 거리는 소리들 쏟아져 나오는 기분 좋은 꿈 같이 하얀 혹 이 나무의 이름을 기억해두실 분 계신가요? 詩舍廊/GEO 2011.06.09
오래된 뿌리들 오래된 뿌리들 2011. 5. 6 상계 주공아파트 14단지 앞 주차장 키 큰 벚나무 한 그루 무성하다 삼십년 아파트가 삭아 내리는 동안 차곡차곡 푸르른 나이를 쌓아온 나무 지난 겨울 짐도 나르지 못하는 엘레베이터로 오른 굽은 등의 어머니 집 510호엔 수도 계량기가 얼어붙고 보일러 배관도 손 .. 詩舍廊/GEO 2011.05.06
무주댁 무주댁 2011. 4. 28 마음 바쁜 출근 시간 물 말아 한 술 뜨는 눈 앞에 TV가 잔잔하다 경상도 전라도가 구름으로 연이은 증산 어디메 굽은 산 꼭대기 마을 늙은 소 뒤따르는 더 늙은 부부 등이 바싹 마른 고개을 닮았다 내 평생 산을 짊어지고 산다 아이요 입으로는 땅을 물고 등에는 산을 지고 .. 詩舍廊/GEO 2011.04.28
연두 연두 2011. 4. 27 서늘한 비 내리고 나니 성급한 봄 바람기 많은 화장이 다 지워졌다. 새로 뜬 부신 햇발에 눈 씻고 보니 온 세상에 푸른 생명이 이슬꽃처럼 맺혔다. 아, 한바탕 분탕질 뒤 봄은 이제야 연두빛 꿈과 함께 일어서나 보다 詩舍廊/GEO 2011.04.27
나폴레옹 나폴레옹 2011. 4. 19 딸에게 조막만한 봄을 선물했더니 그 봄에게 나폴레옹이란 이름을 붙였다 아침이면 조각 빛 닿는 베란다로 출근시켰다가 해가 지면 제 책상 위로 퇴근시키는 나폴레옹 다가 올 뜨거운 여름과 격랑의 폭풍우를 생각하며 푸석한 형광등 아래 하루를 태우는 시간이지만 .. 詩舍廊/GEO 2011.04.19
해당화 해당화 2010. 11. 18 낯선 얼굴을 한가한 담너머로 바라본다 오십을 살면서 처음 만난 꽃 한 송이 시들어 슬픈 노란 장미 어깨 너머로 시골 다방 들뜬 화장기의 무료한 레지처럼 푸석한 낯빛으로 가을을 바라 본다 - 이름이 뭐지 - 해당화 - 아, 네가 해당화구나 너무나 익숙한 이름 그러나 너.. 詩舍廊/GEO 201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