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라고 큰 딸이 영화 티켓을 사왔다. 두 장^^
이준익감독의 "즐거운 인생."
나도, 아내도.. 한참 전에 같은 감독의 "라디오 스타"를 보고 처음 보는 영화이니..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극장이고 영화 산업이고 모조리 망할 것이 분명하다.
내가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다소 부끄럽다.
좋게 말해서 감정이 풍부해서인지 웬만한 내용의 영화이기만 하면 나는 어김없이
영화를 보는 중에 울고 만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가슴에 와닿는 정도의 감동에도
내 경우는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안경 아래로 눈물을 주루루 흘리고 만다.
생각해보라. 나이 마흔 중반에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게 영화를 보는데
혼자 눈물 훔치고 있는 궁상 맞은 모습을...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눈두덩도 제법 붉어지고...
그렇게 100분이면 100분 2시간이면 2시간을 영화에 포로가 되어 있다 풀려나오는 시간이 싫어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비슷한 이유로 TV 드라마도 잘 보지 않는다.
물론 이 경우는 스토리가 뻔하다느니 통속적이라느니 하는 따위의 이유를 대서 아내를 화나게 하지만..
각설하고 토요일 생일날 오후 영화관에서 나는 또 울었다.
스토리는 대단하지 않았다.
우리 또래에 있을 법한 세 남편의 상황에 대한 설정이나 그 답답한 일상을 탈출해 가는 밴드의 모습,
추억 속에서 튀쳐 나온 록의 카타르시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 삶 속 굴레들의 무게,
메탈릭 사운드에 담긴 진정한 즐거움에 대한 메시지, 반항의 언어와 반전 등등...
하지만 그 속에 내 마음이 있었다. 굳이 눌러 놓고, 유보해 놓고, 외면해 온 내 마음....
아버지로, 남편으로, 맏아들로, 형으로 대충 싸서 밀쳐 놓았던 젊은 시절 내 꿈들이 있었다.
대충 스토리를 알고서 본 영화였음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스무살 근처의 내가 스크린 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문학을 소주에 타서 마시고 있었고, 사랑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프로패셔널의 야망도 사이키델릭으로 번쩍이고 있었으며 퇴폐와 정의 사이를 비틀대고 있었다.
닳아 빠진 검은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는 녀석은 적어도 이렇게 후줄근하진 않았다.
내 눈물은 녀석을 향한 그리움이기도 했고 단편 단편 등장인물 속에 담긴 나에 대한 연민이기도 했다.
100분의 영화 속에는 곳곳에 내 마음이, 내 슬픔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감독의 역량이라는 생각을 타이틀롤 자막이 오르는 동안 마른 눈물 자국을 문지르며 했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영화. 내 가슴을 잠깐 들여다보는 정말 1회용 활동 사진으로 딱 좋은 영화.
즐거운 인생이었다.
근데 끝까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 하나.
영화 속 드러머 "혁수"였던가로 나온 김상호라는 배우, 그 사람 혹시 개그맨 김종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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