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일 1.
2007.10.4
자네를
지금 만났더라면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 지나는
이 가을에 만났더라면
날선 모스크바
낯선 호텔 방에서
조마조마
서로의 생각을 더듬던
비장함은 없었겠지
거리 모퉁이에서
자네와
로비에서 나를
바라보던 이데올르기의
날카로운 시선들
첫 사랑이
상대를 탐닉하듯
러시아제 꼬냑과
한국산 사발면 들이키며
서로의 생각을 추궁할 때도
우리의 만남은
엄밀한
반역의 형식으로
백야의 밤
창밖을 흐르고 있었지
사리원 출신
모스크바대 유학생과
대구 출신
어설픈 경제사절단의 대리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일곱살 터울
분단된 조국을 공유한
자네와 나는
서로를 두려워하며
서로를 그리워했었지
20년이 지나
모스크바대
고딕양식 첨답을
스치듯 볼 때마다
자네 목소리 떠오르네
"형님 우리네 기숙사로 놀러 가시지요?"
그리고
그 초청 끝
감추지 못할 두려움을
횡설수설
이데올로기의 함정으로 덮었던
서툰 정의
부끄러운 진정이
오랫 동안
내 가슴에 남아 있음을
고백하네
자넨 지금
북녘의
별이 되어 있는가
나는 지금
남녘의 아버지가 되어있다네
이틀의 만남, 이십년의 세월
쉽사리 자넬 지울 수 없음은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