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균형
2007. 10. 25
어제 아내가 수술을 했다. 수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거창한 수사일지도 모르지만
마취도 하고 꿰매기도 했으니 수술은 수술이다. 금욜 한다더니 기습처럼 어제 해치웠다.
목안 기도에 과도하게 자란 돌기 같은 것을 고주파 레이저로 제거하는 이비인후과 시술이었다.
목안을 레이저로 잘라내고 꿰매놨으니 침을 삼키거나 말을 할 때 통증이 심한가 보다.
어버버.. 벙어리가 된 아내와 함께 다음날부터 먹을 죽거리를 사러 마트를 돌았는데 통역 노릇이
쉽지 않았다.
수술의 계기가 나로서는 좀 찜찜하다. 아내는 언제부턴가 코골이가 좀 심해졌는데 많이 피곤한 날
특히 심했다. 한달쯤 전인가.. 토요일 밤, 나는 뭔가로 예민해 있었고 아내는 몹시 피곤해 있었다.
아내가 먼저 잠자리에 들고 자정이 넘어까지 뭔가를 끄적이던 나는 밤 한시쯤 침대에 누웠다.
근데 그날 아내의 코골이는 제법 대단했다. 한 다섯가지 정도의 음향이 종류별로 데시빌이 다시 다섯
단계로 나뉘어 울리는데 도저히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질 못해 교회도 못갔다. 그게 아무리 아내지만 여자인지라 심하게는
말하지 못하고 '코 좀 골더군.. 잠 설쳤어' 정도로 나름 배려해서 말을 했는데 그게 가슴에 남은
모양이다.
물론 그 직접적인 원인은 아내 직업이 목을 많이 쓰는 일이라 목이 상한 탓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뒤에 있었지만 하여튼 아내 목에 칼을 대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약 먹고 고통스런 숨소리를 쏟으며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만일 내가 코를 심하게 골아(아이들 증언을
빌자면 나도 만만찮아서 어떤 날 이중창이 쏟아지면 건너 방 아이들까지 잠을 설친다드만^^) 아내가
잠을 잘 못 잘 지경에 이르면 나는 과연 목에 칼을 댔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 병원을 무서워하는 체질에 거기다 수술까지 해야 한다면..
아내의 웬만한 협박과 회유가 있어도, 그야 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꿋꿋히 버텼으리라 쉽게
추정되는 일이다.
그런데 아내는 수술을 했다. 원래 아픈 걸 못 참는 사람인데 무엇이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을까?
그게 나 한테는 부족하거나 없는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을 힘들게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랑, 가족을 위해서라면 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 아닐까?
잠들지 못햇던 그날이 지나고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코 골까봐 그래서 하늬아빠 잠 못 잘까봐 쏟아지는 잠을 참고 하늬아빠 잠들 때를 기다린다고.."
나이 먹어가면서 이 여편네가 자꾸 사람을 미안하게 만드는데 참 미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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