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가족 그리고 기억

처남에게

취몽인 2008. 11. 3. 15:07

 

 

2008. 11. 3 (월)

 

  가끔 들른다며.. 흔적이라도 남기지 그랬냐.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매형이나 누나가 처남의 작은 걱정이 되어버린 것 같아 미안하이.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기복은 있는 법이지만 모질지도 못한 내 아집이 우리 가족들의

평온한 행복을 너무나 오랫 동안 흔들어 왔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특히 많이 하게 되네. 

 

  무책임한 센티멘탈과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로 좀 더 나은 길을 팽개친 채 살아온 20여년.. 

그 비겁함이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동생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형편이 되고 말았네.

물론 가장 힘들고 고생이 많았던 사람은 자네 누이임에 분명하지만 자네에게도 등 기댈 형 노릇은 커녕

기울어진 담벼락처럼 늘 흔들리고 불안한 모습만 보였던 것 같아 새삼 자조가 드네.

 20여년 전 피카디리 근처였던가... 함께 밥 먹던 까까머리 자네에게 작은 기둥일 수도 있었을 이 형이

지금은 쇠락한 전봇대가 되어 풍상 붙이고 그냥 버티고만  서있는 모습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처남, 너무 서러워하지 마시게. 자초한 풍랑 속을 걸어 왔어도 되짚어 후회만 하지는 않고 있네.

하늬 무늬가 잘 커줘서 그 옛날 까까머리 처남만큼 꿈을 안고 세상 문앞에 서 있고 나 또한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세상에 감사할 만큼의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살고 있네.

비틀 대며 걸어 온 삶이지만 어깨 가득 졌던 짐을 내려 놓아도 좋을 길 끝이 저 멀리 보이기도 하고..

분노 가득했던 성정도 이젠 모가 많이 깎여 부드럽게 고난을 이겨나갈 정도는 되어 있는 것 같으이.

 

  조금 더 자주 보고 치열하지 않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더 좋으련만 아직 그 정도 여유는

서로에게 없는 듯 하이. 하지만 그 시간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

자네는 아직 더 달려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고 또 이루어야 할 성취(또는 의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 끝에 서 있는 모습을 스스로 보게 될거라 생각하네.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았으면 하네. 우리가 걸어온 뒷 길들을 바라보면 지금 우리가 선 곳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으이. 

 

  지금 마음 속으로는 편안한 자리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자네에게 소주 한 잔 권하는 심정을 담고

이 글을 쓰네. 글이란게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느껴져야 하는 법이지만 아직은 내공이 부족하다네. 

언제 시간 내서 시원한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소주 한 잔 하세. 가족으로 말고 남자로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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