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가족 그리고 기억

수능 치르는 무늬에게..

취몽인 2008. 11. 12. 14:44

 


  길을 걸어온 사랑하는 무늬에게

 

 

  2년 전 수능을 앞둔 언니에게 편지를 쓴 일이 며칠  전  같은데 벌써 무늬가 수능을 맞았구나.

 

 애써 숨기려고 하지만 얼굴에 잔뜩 불안을 담고 있는 우리 딸을 보면서 요 몇 주간 아빠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편치 않더구나. 부모는 자식의 마음을 가슴에 그대로 담고 산다는 것을 딸이

알려나 모르겠다. ^^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면 그 지난한 시간들을 정리하고 쏟아 놓아야 할 수능장 책상 앞에 앉아있겠지..

무겁고 찬 기운이 흐르고 주체할 수 없는 긴장이 어깨를 누르는 그 곳에 너만 혼자 두고 안타까운 아빠는

회사로 돌아가 있겠지..  참 싫은 시간이다 그렇지?

 

 

  우선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하나, , , , 다섯에 걸쳐 천천히 내 뱉어봐라. 조금 마음이 가라 앉을 거야.

시험 중에도 당황되는 순간이 되면 잠깐 멈추고 같은 방법을 써 봐. 긴장을 풀고 마음을 가라 앉히는 호흡법이라고 하더라.

천천히 내 쉬는 게 핵심이래..  언니 때도 같은 방법을 말해줬는데 언니가 해 봤는지는 못 물어 봤구나.

하지만 아빠는 가끔 긴장되고 불안할 때 도움이 되더구나. 어떻게 걸어온 길인데 긴장 따위 때문에 망칠 수는 없잖아.

단지 심리적일 뿐인 긴장 따위 보다는 네가 훨씬 강한 존재란 사실을 잊지 마라.

 

엄마 아빠는 늘 무늬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란다.

고마운 것은 지금까지 너무나 예쁘게 자라줬고 다른 집 부모처럼 공부 때문에 속을 썩지 않도록 해준 것은 물론이지.. ^^

게다가 얼마나 반듯하게 자랐냐? 정의를 사랑하고 예의 바르지 친절하지.. 아빠에겐 늘 과분한 딸이다.

미안한 것은 네가 걷는 길에 좀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고 다른 집들처럼 늘 넉넉히 넘치도록 밀어주는 후원자가 되지 못했던

것과 엄마 아빠가 자주 다퉈 네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 마음에 항상 걸린단다 

아빠가 진심으로 미안하고 사과할게. 무늬야.

 

  수능,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인생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 엄청나게 중요한 일은 아니란다.   

그저 힘들게 통과해야 하는 왜곡된 문 같은 것이지. 이 문을 통과하면 네 앞에는 또 다른 문이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제각기 만만치 않게 너와 싸우게 될거야. 하지만 아빠 나이쯤 돼서 뒤돌아보면 다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들이란다.    

그 시간을 즐기는 무늬가 되었음 한다. 아빠도 언제나처럼 너의 그 즐거움에 늘 함께 할거야.

 

  네가 지금 앉은 작은 싸움의 자리. 최선을 다해 이겨내라.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실수를 미리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 그것이 납득할 수 없는 명백한 실수라면 다시 시작하면 될 뿐이야.

네가 납득하지 못하는 결과는 아빠도 납득하지 않을 것이고 아빠가 같이 다시 시작해 줄 수 있어.              

그러니 미리 조바심을 낼 필요는 전혀 없는 거야.

 

  지금 막 떠오른 해가 지고 길고 긴 네 인생의 단 하루에 불과한 오늘이 까무룩히 저물 무렵이면 넌

하룻  동안의  긴 여행에서 돌아와 지친 모습으로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되겠지. 

그래도 겸연쩍게 피식 웃는 얼굴과 예의 너 만의 따따따따 쏟아지는 수다를 기다리마

네 시간이 허락되면 맛있는 저녁을 먹고 새로 시작한 테트리스나 실컷 하자.  노래방도 갈까?

 

 각설하고 내일 다시 떠오를 무늬의 태양은 오늘과는 다른 태양일거야 

훨씬 더 밝고 뜨겁고, 에너지가 충만한 신나는 태양일거야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무늬는 꼭 명문대생 무늬는 아니란다. 그건 누차 말해왔다고 생각한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빤 그랬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단다. 늘 걱정은 네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 할까 하는 것이지 .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무늬는 자기의 미래를 향해 지금처럼 오직 바르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건강한 무늬란다.  

대학은 네가 일생 동안 가질 수 많은 게임 아이템 중 하나일 뿐 최고의 아이템은 아니야.

 

  지루하고 재미 없는 게임, 하지만 참 오랫 동안 해 온 게임. 잘 마무리하고 나와라.

네 뒤엔 지금도 너를 세상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엄마 아빠 언니가 있단다.

 

 이 세상에 사랑하는 딸 무늬가 있어 너무 행복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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