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先生

취몽인 2007. 11. 28. 11:16

 지난 주,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고등학교 동기 모임.

늘 순대국에 소주나 기울이다 치즈 수입업을 하는 성공한 친구 덕에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다는 치즈 레스토랑에서 난데없는 호사를 누렸다.

 

 

 

 

 거의 푸드스타일리스트에 가까운 친구 녀석의 설명에 이어

그 레스토랑의 쉐프인 미모의 친구 아내가 내어 온 요리들..

프랑스 와인에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에서 들여 온 갖가지 치즈..

그리고 치즈를 넣은 몇 개의 고기 요리에 퐁듀까지...

 

 짐짓 멋있게, 교양있게 먹기는 했지만 두시간 남짓 요리를 먹는 동안

자꾸만 순대국에 소주, 빈대떡에 막걸리가 생각나는 건 무슨 조화일까?

고개 돌려보니 교수에 변호사에 CEO에 제각기 폼을 잡고 있는 녀석들 표정에도

얼큰한 찌게와 소주를 그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촌놈들. 그래서 우린 친구일 것이다.

 

 자리를 파할 무렵에 키큰 친구 놈이 하나 새로 왔다.

일학년때 한반이었던 걸로 기억은 하지만 분며하진 않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보는 얼굴이니 지워진 기억도 큰 허물은 아니리라.

 

 녀석은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자마자 나를 보더니 대뜸

"재덕이 니는 영판 선생님처럼 보인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정작 내 옆에 앉은 행정학 박사 교수는 젖혀둔 채 말이다.

 

 "선생같다."라는 말. 

짧은 인생, 살아오면서 많이 들은 말인데 그날따라 마음에 딸깍 걸렸다.

'왜 나를 보고 선생님을 떠올리는 것일까?'

전에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었다.

순해보이고... 뭔가 학구적인 분위기가 나고.. 점잖고... 뭐 이런 이미지들로..

 

 그런데 그 날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세상을 힘차게 헤쳐나가지 못하는 유약한 존재 같은..

사회적인 성공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아웃사이더의 모습...

아직도 문학 청년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 꿈꾸는 자의 어설픔....

그런 것들을 모아서 녀석은 나를 선생으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피해망상에 가까운 생각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자리를 마치고 돌아 왔지만

아직도 머리 속에 "선생님 같은 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선생님의 진정한 가치와는 별개로, 이미지화 된 계층으로의 나 그리고 선생.

그 간극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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