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내려가는 남도 길은 가을이 가득하더군요.
산들은 만가지 색이 어울려 소란스럽고 여름 걷이를 마친 들판은 숨을 고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책을 읽으려 폈지만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을이 아까워 눈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서울을 등지고 떠나는 길은 너무 편안했습니다.
해질 무렵 어설프게 일이 끝나고, 고민하다 돌아오는 길은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서쪽 산에서 빨간 볼로 작별하는 저녁 해를 밀어내며 버스는 서울을 향했습니다.
기차와는 다르게 앞자리에 앉은 버스는 내가 갈 길을 미리 보여주더군요.
어둑해지는 도로 끝, 버스는 빠르게 소실점을 향해 달리고
차창 밖 무거운 표정의 풍경들은 소실점에서 튀쳐 나와 넓게 퍼지며 내 뒤로 사라지더군요.
언젠가부터 풍경은 뒤로 사라진다는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전에는 풍경이 앞으로 달려 온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사는 일이 아쉬워진 탓이겠지요.
근데 오늘 저녁 귀성길은 내가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향해 까마득하게 찍힌 소실점.
그 점을 향해, 소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
서울은 나의 소실점인지 모릅니다.
나를 잃는 곳, 그리고 내가 아닌 익명의 누군가 대신 사는 곳.
허둥지둥 돌아 다닌 내 그림자들이 가득한 곳. 그림자들이 흘린 땀과 욕지기가 흥건한 곳.
사랑하는 가족과 내 삶이 고스란히 있음에도 그곳은 두려운 곳입니다.
창밖으로 따뜻한 가족들의 대화가 품어내는 불빛들이 서울로부터 도망쳐 달아납니다.
떠나기 전 외국에 있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슬퍼하는 친구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소실점 안에는 그의 슬픔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을 겁니다.
얇은 지갑과 그보다 더 얇은 희망과 고개들면 구름처럼 쏟아지는 우울들...
나는 그곳을 향해 떠나는 풍경을 박차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기 멀리 빛나는 소실점의 아가리가 보이네요. 가속도는 뒤돌아 봄도 허락치 않습니다.
느리게 소실점은 확대되고 나는 그 곳에서 담배를 핍니다.
벌써 그림자는 내곁에 딱 붙어 있네요. 생각보다 빈 택시가 빨리 와서 피던 담배를 끕니다.
다시 차장은 출발을 하고 풍경도 뒤로 떠납니다.
하지만 이미 도착한 소실점에는 속도가 없습니다. 점도 없습니다.
사위가 모두 빛으로 산란하고 그림자도 이리저리 뜁니다. 피곤한 정신 뺨이라도 때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