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예술인 마을

취몽인 2007. 10. 31. 17:51

 서울 사당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남현동이란 마을이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과천 넘어가는 옛 과거길 남태령이고 서쪽으로는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까치가 유난히 많았다는 까치고개, 그 사이에 오드마니 자리한 남현동은 주말이면 관악산을 찾는 산꾼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죠.

 

 옛날에는 이 동네 이름도 길 건너 동네처럼 사당동이었다더군요.

그리고 그 이후인지 같이 불려졌었는지는 모르지만 남현동은 "예술인 마을"로 알려져 왔습니다.

택시를 타도 '남현동' 하면 '남영동이요?'하는 질문이 돌아오기 쉽상이었지만 '사당동 예술인 마을'하면

곧잘 태워다 주곤했고 버스 정류장 이름도 남현동은 없는데 예술인마을은 있는 걸로 봐서도 남현동보단

예술인마을이 더 유명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오래지 않은 옛날에는 정말 예술인들이 꽤 살았었나봐요. 동네 입구에는 지금은 헐려버렸지만,

예술인 아파트가 있었습니다.지금 개념으로 본다면 원룸 아파트에 가까운 쬐끄만 평수의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그곳에 조금 덜 가난한 예술인들이 많이 살았었나 봅니다. 아마 정부의 문화를 향한

쥐꼬리만한 배려의 흔적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하여튼 과거 속에서 흉물처럼 남아 있던 그 예술인 아파트는 지금은 공영주차장과 상가건물로 변해서

흔적도 없고 그 곳에 살던 예술인들 다수는 새로 조성된 안산 예술인촌으로 많이들 옮겨갔다고 합니다.  

 

 가장 최근까지 예술인 마을을 지킨 예술인(?)은 년전에 돌아가신 미당 서정주 선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운사 가는 길 고창 즈음에 선생의 생가 안내 표지판을 본 것 같은데.. 정작 선생은 말년을 이곳 관악산

기슭에서 보내셨고 또 생의 마지막도 이 곳에서 맞으셨죠. 말년에 병세가 악화 되기 전에는 내 후배가

근무하는 동네 은행 출장소에 들르셔서 근무 중인 후배를 끌어내 낮술도 하시면서 쓸쓸함을 달래시기도

했다더군요. 일가를 이룬 시 예술의 노장이 보낸 만년, 후배의 말을 빌면 그저 외로움 많이 타는 노인이셨다고 하더군요.

 

 저희 집에서 걸어서 2분 정도 거리에 선생이 살다 떠난 집이 있습니다. 축대 높은 개량 양옥 집인데

선생은 떠나고 선생의 이름이 선명한 문패만 성성하게 거장이 머물다 간 공간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철문 틈으로 들여다 본 집안은 말 그대로 황량한 모습입니다. 빈집으로 방치된 세월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온기라곤 전혀 없는.. 마당의 오래 된 감나무엔 수확의 기약 없는 익은 감들이 홍시가 되어가고

있고 마당은 온통 낙엽으로 가득하더군요.

동네 사람들 말을 들으면 그집은 이제 어떤 건축업자의 손에 넘어가 조만간 헐고 빌라를 짓는다더군요.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내가 사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치기처럼 했습니다.

막상 살라고 하면 아마 무섭기도 하고 생전 선생의 엄청난 기운에 눌리기도 할 것 같아요.

 

 

 그집이 헐리면 이제 예술인 마을의 진정성도 사라지겠죠. 예술인이 모두 떠났으니까. 그리고 예술인의

자취조차 지키지 못했으니까... 예술인 마을과의 이별이 못내 섭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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