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나무가 보이는 책상

취몽인 2008. 10. 8. 18:01

 

 

2008. 10. 8 (수)

 

  제법 가을이 익어 간다. 오늘이 한로, 찬 이슬까지는 아니지만 하늘이 싸아하다.

 

  어제 필동 남산 아래에 내가 앉을 책상이 하나 더 생겼다.

회의 테이블 끝에 휑하니 놓였지만 일주일에 이삼일은 엉덩이 붙이고 지낼 자리이다.

얼마 전 비오는 날에 사무실 옆으로 난 조그마한 베란다에 서보니 남산이 운무(?)에 제법 운치가 있었다.

살다보니 이렇게 남산 자락에서도 자리를 얻어 앉게 된다 싶다. 

 

  서울에서 살면서 산과 지척인 곳에 자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복일 것이다.

우선은 눈이 먼저 호사이다. 강남 바닥 빌딩과 아스팔트, 그 사이에 기생하듯 헉헉대는 가루수만 보다

도심의 산이지만 제법 숲이 들어선 산과 녹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보름 전 이사 온 강남 사무실도 괜찮다. 빌라형 가정집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쓰는데

분주한 강남대로 뒷골목 답지 않게 정원이 깊다. 넓지는 않고 좁은 공간이지만 감나무, 모과나무, 소나무,

향나무등 수령이 제법 된 나무들이 4층 빌라 키높이까지 드리워 있다. 요즈음은 감도 모과도 제법 달려

있어 정취가 색다르다. 나무 아래서 깊은 담배를 피는 모습도 한결 고즈넉하고 괜히 몸에도 좋아 보인다.

 

  오전에는 남산 아래에서 일을 보고, 오후에는 논현동 모과 나무 아래 방에서 머물다

밤이 되면 관악산 자락에 놓인, 어린 앵두나무가 엄마 죽은 자리에서 자라는 집에서 잠드는 요즘의 일상.

동선 만으로는 제법 풍요하게 사는 셈이다.

 

  아내가 많이 지쳤다. 쉽사리 쌓이지 않는 성과로 짜증도 부린다. 나는 나대로 가게에서 발을 빼지 못해

늘 시간에 �기고 힘이 든다. 애초에 감당하지 못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쓰리 잡, 포 잡에 가게 돕는 것까지...  내 인생에 경제 활동으로 인해 이렇게 바쁘긴 처음이다.

어울리지 않게, 또는 턱 없이 '과유불급'이란 말이 떠오른다.

 

  전화가 왔다. 급히 해야할 일을 깜빡했다.

요즘이 딱 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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