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9(수)
때 이른 추위가 제법 매섭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기가 종아리에 시리게 꽂힌다.
발이 차면 온몸이 다 차가워지는 것 같다. 남산 넘어 오는 구름들도 추운 듯 허겁지검 달리는 것 같다.
정읍인가는 첫눈이 25cm가 쌓였다는데... 내일 서울도 눈이 온다는 예보. 추워도 눈은 기다려진다.
둘째 무늬 대학입학 날씨도 제법 춥다. 가고 싶은 대학에는 점수가 간당간당하고.. 재수는 무섭고..
하루하루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 중이다. 덩달아 제 엄마도 나도 부화뇌동 중이다.
소신 껏, 대학 이름 위주가 아니라 전공 위주로.. 제 언니의 대학 간판 따기 하향 지원 이래 외쳐왔던
구호는 현실 앞에서 꽁꽁 얼어 붙었다. 이래저래 속상한 교육 현실이다.
제법 점수를 얻은 녀석이 저 모양이니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과 부모가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어제는 장인 제사였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장인, 40대 쯤에 찍은 것 같은 사진으로 본 모습이
기억의 전부인 그 어른.. 하긴 아내도 시아버지 못보긴 마찬가지구나...
이맘때가 기일이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녁에 아내가 날 선 목소리로 오늘이 제사라 일러준다.
제삿날도 기억 못하는 맏사위 꼬락서니에 섭섭해 하는 표정이다. 미안한 일이다.
다이어리에 확실히 메모해 뒀다. 음력 10월 21일.... 내년에는 절대 잊지 않으리..
제사를 맞은 큰 처남네 모습이 우습게 됐다. 큰 처남은 운동하다 다쳐 깁스를 해야 할 형편이라 하고
그 제사를 물려 받을 늦둥이 장손 녀석은 놀다가 다쳐 눈두덩이를 여덟 바늘이나 꿰맸다니..
장인 어른이 제사 받으러 정말 오셨다면 기막혀 할 노릇이다.
다가 오는 주일에는 김장을 한다. 칠순 노모가 바쁜 며느리를 대신해서 올해도 고생이 많다.
근년에 들어 서로 나이가 더 들면서 고부간에 서로 통하는 것이 많아지고 서로를 안쓰러워 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 한결 마음이 편하다.
서로의 부족함을 보지 않고 서로의 애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사는 큰 지혜임을 새삼 깨닫는다.
오후에는 사무실 동료가 아버지 임종을 준비하러 황망히 사무실을 나섰다. 오랜 고통의 끝에 다다르셨다고, 이젠 가족들이 결정을 할 시간이라고 했다. 요즘의 임종은 이 잔인한 결정에 따르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우리 아버님도 나의 결정에 따라 임종을 하셨다.
결정이라는 것. 특히 삶과 죽음의 선을 긋는 결정이라는 것.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25년, 그 세월의
덧칠에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부담으로 내겐 남아 있다. 아버님의 임종을 내가 결정했다는 죄책감으로..
늦가을 하루 해가 참 짧다. 서쪽 하늘이 남산에 가리운 이 필동은 더더욱 짧다.
이 가을도 짧을 것이고, 그 짧은 시간들이 모인 나의 삶도 그리 길진 않으리라. 괜히 소주를 마시고 싶다.
'이야기舍廊 > 하루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 2009.01.23 |
---|---|
눈이 필요한 시간 (0) | 2008.12.22 |
나무가 보이는 책상 (0) | 2008.10.08 |
들어 올 때와 나갈 때 (0) | 2008.10.02 |
하루 같은 한달 (0) | 2008.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