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김진애 <이 집은 누구인가>

취몽인 2009. 8. 31. 15:30

 

 

 

 

몸과 마음 그리고 시간이 모두 메말라 이 책 한권을 읽는데 한달이 너머 걸렸다.

물론 동시대에 일가를 이루고 있는 유명 건축가의 글인 탓에 전문적 식견이 녹아 있어

선뜻 소화해 내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역시 그 보다는 마음의 부족한 여유 탓이다.

 

서울공대 800명중 유일한 여학생이었다는 건축가 김진애씨가 쓴 집에 관한 에세이라고나 할까..

작고한 장욱진 화백의 집을 지었다는 작가의 경력에 어울리게 10개의 테마를 나누는 간지에는

어김없이 장욱진 화백의 정겨운 그림들이 자리를 하고 있는 부러운 책이다.

 

저자는 어릴적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자신이 거쳐가며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집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들을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다.

 

건축가 답게 또는 건축가 답지 않게 틀에 박힌 집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정겨운 집을 추구하는 자신의 철학을 자신과 주변이 경험한 또는 할 수 

있음직한 사례들을 들어 주장한다.

 

동시에 여유와 실용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집을 만들라는 권유도 쉼없이 한다.

 

책중에서 시부모와 형제 그리고 저자 가족이 한 건물에 살고 또 사무실도 같이 두기 위해 설계하고

직접 지은 세가족 집 이야기는 저자가 가장 힘주어 든 예이기도 하거니와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가장 부러운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좋은 집의 예로 느껴졌다.

 

그 세가족 집의 재미 있으면서도 독특한 발상... 아이들을 한방으로 모으면서도 문은 따로 내주고

각자의 공간 분할을 위가 트인 책장으로 나누어 소통할 수 있게 한 아이디어라든지 부부 침실을

공동으로 쓰는 침대만 가운데 배치하고 좌우 대칭으로 양쪽으로 난 문이며 각자의 옷장, 책상들을

따로 둔 센스 같은 것도 참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그리고 옥상 정원을 꾸미고 그곳에 인터넷에,

바비큐 파티장에, 화단에, 누워 쉴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든 건 특별히 부러웠다.

 

무엇보다 전문가라는 위치... 자신의 전문성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저자의 삶이 부럽다.

건축가로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과 기술을 발휘해 집을 짓고 가꾸는 저자..

 

나는..?  광고인으로서 어떤 전문성을 동원해 가족들을 위해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없지 않나?

돈 벌어 남이 지은 집을 사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 외에 나의 광고는 쓸모가 없는 듯 보인다.  

 

책을 덮고 난 뒤 생각해본다.

나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이런 것들도 잘 생각해보면 내 가족과 나를 위해 특별하고도

실용적인 가치를 창조해 낼 잠재력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오래 생각해 볼 일이다.

 

그 보다는 먼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고 좀더 넓은 집으로 옮겨야 한다는 코 앞의 현실이

대책없이 한심하긴 하지만 이 다음 우리 가족의 집은 어떤 모습으로 날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를 갖게 되는 건 저자기 내게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