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 자꾸만 내가 세상 한켠으로 밀려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책을 읽으면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되어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유익을 대변하는 말일진데.. 왠 패배의식인지......
아마도 그건 내가 가지 못한 길을 발견하고, 되짚고, 동경하기 때문에 현실 속의 나를 무의식 중에 부정하는
탓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독서는 많은 유익을 주지만 일면 이런 해악도 있는 것 같다. 또하나의 부작용이라면
한 번 책을 잡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동안은 여러 책들 사이에 빠져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몹쓸 중독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되짚어 보니 지난 한 달 사이에 열권 가까은 책을 읽었나 보다..
그러니 현실이 얼마나 내게서 멀리 떠나 있으랴?
신진 현대 미술가이자 미술사 에세이 몇권을 펴낸 작가이기도 한 한젬마라는 친구가 쓴 책이다.
표지에 당차게 디민 얼굴처럼 나름의 사명감과 의식으로 우리나라 화단 거장들의 발자취를 찾아 그들
예술 세계 속에 깃든 지난 삶의 흔적을 추적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생가를 찾거나 무덤을, 비석을 찾는 것은 내게는 별반 감흥이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화단이라는 공동체로
묶여 후배가 대단한 선배의 발자취를 찾았을 때 느낀 감흥이 다만 감상자의 위치일뿐인 내가 국외자의 느낌
으로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책에서는 김기창, 이응노, 장욱진, 박생광, 양달석, 유영국, 이인성, 이쾌대, 하인두, 서동진, 박수근,
신사임당 등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가 대표작들을 소개해 두었기에 이들 거장들의 힘 있는 그림들을 해설과
함께 다시 볼 수 있는, 그래서 그분들의 예술혼을 되새김질하듯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특히나 운보의 <태양을 먹은 새>, 고암의 <군상> 등은 많이 보았음에도 새삼 강한 인상으로 부딪혀 왔다.
제대로 된 원화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그리고 눈에 띄는 한사람 '유영국', 그가 추상으로 그려낸 <산>이란 작품이 마음 속에 오래 남는다.
저자의 "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참 예술의 길"이란 취지의 해설가 함께...
글도, 그림도 결국은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한 무엇인가를 가장 단순화하여 압축해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바이며 도달할 경지라는 생각...
비단 예술 뿐이겠는가?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 살고 있는 이 번잡함을 단순화할 수 있을 때
삶의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그것이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 아닐까?
쉽게 떠나지 못하는 여행이지만 앞으로 길을 떠날 때 저자가 일러 준 작은 미술관들을 찾아 갈수도 있겠다.
그곳에서 책과는 다른 또다른 후퇴를 만날지라도 후퇴 또한 의미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작전상 후퇴?'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하나, 시종 당당한 저자가 책의 맨 마지막에는 신사임당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훌륭한 화가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작가들의 이력이나 성과 그리고 활동 연대 등을 고려할 때
너무나 동떨어진 선정이어서 저자의 패미니스트 컴플렉스를 일부러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시나브로 들어서 옥에 티처럼 느껴졌다. 그 친구의 참 의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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