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마흔여덟번째 생일입니다.
나이가 한 살씩 더 먹어가도 스스로에게 생일의 의미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여느 날처럼 아침에 일어나 냉수 한 잔 마시고 출근을 했습니다.
아내는 굳이 미역국을 끓여 주겠노라 했지만 원래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저로서는
효용을 기대할 수 없는 투자라 생각해서 강력하게 말렸습니다.
늘 피곤한 아내가 그 시간에 좀 더 쉬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고 그 상황이 선물이라 생각됩니다.
회사에 출근하니 후배 직원 하나가 책 한권을 선물로 줍니다.
보경스님이 지은 <사는 즐거움>이란 책입니다. 제가 최근에 스님들의 맑은 정신이 담긴 에세이를
즐겨 읽는 것을 후배가 봤었나 봅니다. 그 관심과 배려가 고맙습니다.
컴퓨터를 켜보니 카드사 등 각종 사이트에서 생일축하 이메일이 여러 통 와 있습니다.
자동으로 다수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시스템의 사회.. 공연히 수근대는 욕설처럼 들립니다.
최근엔 자주 인생 후반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당연한 일이겠지요.
둘째 무늬가 이제 대학 1학년이니 한해 정도 휴학을 한다고 해도 늦어도 4~5년이 지나면 아이들
교육 책임은 끝날 것입니다. 어릴적부터 대학 공부까지만 아빠가 책임진다고..
그후의 공부, 그리고 결혼 같은 것은 온전히 너희들의 몫이라고 세뇌를 시켜왔으니
그때가 되면 나도, 아내도 여러가지로 가벼워 질 것입니다.
우리 부부의 나이도 그때엔 쉰 두,셋 정도가 되고 지금과는 사는 상황도 많이 바뀌어 있겠죠.
우선 더 이상 제가 하고 있는 광고일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럼 뭘 하고 있을까?
뭘 해야 할까? 그 생각이 근년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이번 생일엔 제 개인적으로 엄청난(?) 시도를 하게 됩니다.^^
평생을 입어 본 적이 없는 청바지를 한 번 입어볼 요량입니다. 어이없다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마치 20년 만에 처음으로 공중 목욕탕을 들어 가던 때의
대책없는 부끄러움, 두려움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이해가 가실런지요.
어쨓던 아내와 아이들에게 금년 생일 선물은 청바지를 하나 사달라고 요청해 놓았습니다.
한쪽 다리가 가늘어서 짙은 색의 바지만 평생 입던 남편이 갑자기 청바지를 입겠노라고 하니
아내가 깜짝 놀라더군요...... 그러면서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왜 인지는 모르겠어요.^^
정작 제 스스로는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입는 청바지를 평생
한 번도 입지 않고 산다면 나중에 후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연히 들어서일 뿐입니다.
사실 청바지를 입은 제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긴 해요.
그래도 48년 동안 청바지도 한 번 못 입어 본 나를 위한 나 스스로의 생일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퇴근 무렵에는 직원들이 생일 파티를 해줄 것입니다. 축하 노래도 부르고 케잌도 자르고 하겠지요.
그리고 한 잔을 기대하는 직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집으로 가면 늦은 밤 아내가 귀가할 시간에
생일날 30분을 남기고 다시 아이들과 케잌 파티를 할 것입니다.
그때 청바지도 아마 처음 입어보게 되겟죠.^^ 잘 어울렸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슬픈 일.
내 생일이란 바로 내 어머니가 나를 낳아 주신 날이잖아요? 그런데 최근 한 두해 사이에 어머니가
큰 아들 생일을 깜빡 깜빡 하십니다. 연세 답지 않게 총기는 여전하신데 작은 것들을 잊어버리실
때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내 생일 따위야 기억 못하셔도 좋으니 지금처럼 건강만 하셨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나중에 깜빡 하셨다는 걸 아시면 스스로 겸연쩍어 하실테니
아이들시켜 살짝 힌트라도 드리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ㅎㅎ
우리는 서양과 달리 태어나자 마자 한 살이잖아요.
나이를 선불로 먹고 인생을 후불로 사는 셈이죠. 마흔 여덟 나이도 마찬 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마흔 여덟의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거죠.
리바이스 블루진을 입고....................................................................................
와일드하고 센티멘탈하게..................................................................................
출발해 볼 작정입니다. 같이 가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