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담쟁이 덩쿨이 고개를 기웃거리는 집.
그런 집에 살았음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이년전 봄에 앞집 담벼락에 딱지처럼 앉은
해묵은 담쟁이 씨앗을 갈무리해서 창문 아래 벽과 블록이 만나는 틈새에다
꾹꾹 눌러 두었었다.
한 해가 지나고 몇 번인가 어린 싹이 돋았는데 어느 놈은 제풀에 말라 죽고
어떤 놈은 청소하는 아줌마가 주변 잡풀을 뽑으며 멱을 따버리곤 했다.
올해 봄에 또 두 녀석이 고개를 내 밀었다.
드나들 때마다 애면글면하며 살폈는데 한 녀석은 또 아줌마 손을 타버리고
한 녀석이 아슬아슬하게 아직 살아 남았다.
제법 덩쿨 손도 내밀어 두 갈래로 벽을 타는 모습이 담쟁이 다워 보인다.
한쪽 팔이 바닥으로 기길래 잡아서 벽에 붙여 놓았더니 그대로 기어 오른다.
뿌린 씨앗이 대충 스무나믄개쯤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녀석이 살아 남은 셈
언제까지 아줌마의 방심을 기대할 수 있을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젠 제법 덩쿨의 모양을 갖추었으니 아줌마가 그 생명을 인정해 줄지도 모른다.
지키고 섰을 수도, 뽑지 말아달라고 방을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줌마의 안목에 기대할 수 밖에 없는 내 꿈이 안타깝다.
마당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공용의 작은 뜰,
13년 된 내 늙은 차가 밤이면 휴식을 취하는 그 주변에서 가꾸는 생명이 소중하다.
죽은 어미 자리를 딛고 다시 나무로서의 모습을 갖춘 앵두나무와
이제 막 목숨을 뻗쳐 가는 어린 담쟁이.
내 손으로 지키는 녀석들의 삶이 애닯고 안쓰러운 것은 내가 늙어가는 탓일까.
지금 사는 집을 팔려고 내놓은 형편인데... 정작 집이 필리고 이사를 가면 녀석들은
어떻게 될까?
이사를 가더라도 몇년 뒤 여름에 다시 찾았을 때 손가락 굵기의 앵두나무가 손목 굵기만
하게 자라고 그 곁으로 어른 키만큼 자라 오른 담쟁이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단 막연한
기대를 갖는다. 그럼 참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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