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가족 그리고 기억

세대 교체

취몽인 2010. 8. 23. 16:26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추도식 날입니다.

 

내 나이 스물 둘이던 대학 3학년이던 1983년 여름에 쉰하나의 연세로 돌아가셨으니 올해가 27주기인 셈입니다.

큰딸 하늬가 올해 스물 셋이니 사오년만 더 사셨어도 손녀 얼굴은 보고 돌아가셨을텐테 너무 빨리 가셨죠.

그리고 내년이면 내가 쉰이 되니 거의 돌아가신 아버님 나이에 가깝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오늘이 월요일이라 어제 주일에 가까이 살면서도 한달에 한번 찾아뵙지도 못하는 어머니댁에 가서 하루 당긴 추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근처 한방 삼계탕 집에 가서 모처럼 삼대 여섯 식구가 한 자리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이른 감이 있지만 분명 우리 집도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든의 어머니 쉰의 우리 부부와 조금 아래 동생, 그리고 이십대 초반의 우리 아이들.....

앞으로 오년 내지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어머니와는 이별이 가까왔거나 아니면 이미 이별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나 역시 아마도 현역에서 은퇴하고 사회의 예비역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을테지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결혼을 하고

우리 부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안겨주겠지요. 그럼 어느 정도 세대 교체가 이루어 진 셈일 겁니다.

그 모든 일이 앞으로 십년 안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내 기억 속에 뚜렷한 두 가지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비교적 젊은 시절, 성실치 못한 모습으로 어머니와 큰 아버지의 속을 무던히 썩혔던 아웃사이더의 모습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술을 많이 드셨고 그 덕에 집안 생활은 내가 초등학교 사학년이 될 때까지 남의 집 단칸방을 전전할만큼

넉넉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버지의 젊은 날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반항아적인 모습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상대적으로 반듯한 삶을 살았던 형에 대한 반발이었던지 그저 비뚤어진 성격 때문이었던지 그저 짐작해볼 따름입니다.

두번째는 우리 형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부터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악화된 건강 사이에서 힘들게 사셨던  모습입니다.

큰아버지의 철공소를 다니시는가 하면 제천으로 목수일을 하러 가시기도 하고 내 나이 열한살에 대구 두류산 밑에 마련한 가게 딸린

우리 집에서 중국집, 만두가게, 만화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었지요.  만화가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하던 장사는 제대로 되지 못했고

만년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큰 아버지 철공소일을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고정적인 수입이 부족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 때문에 자연 우리 집은 내핍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내가 대학을 다니던 무렵에 일주일 용돈이 오천원이었으니... 당시 담배 한갑에 오백원..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  무거웠던 아버지의 책임이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 오니 이제는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 무게는 세대를 이어주는 가장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어깨에 지어진 무게 또한 다름아니구요.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줄 병원비며 약값을 아껴가며 그 책임을 고스란히 감당하다 쉰하나의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아버지의 그 감수 덕에 그정도보다는 나은 수준에서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게 다르다면 다른 것이겠지요.

 

요즈음은 세월이 좀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지나 온 오십년, 그리고 남은 이삼십년 세월을 생각하면 시간의 흐름을 지체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지워진 책임의 무게를 빨리 덜고 싶다는 부담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반드시 흐르고야 말 시간을 견디지 못하시고 떠나신거죠.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의 분량은 돌아가신 아버지는 미처 살아보지 못한 삶입니다.

아버지도 끄ㅜㅁ꾸셨을 법한,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난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좋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분명히 그 삶에도 고통과 무거움은 존재하겠지요.

 

그렇지만 그 삶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좀 더 여유있게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삶이었음 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삶에 내 삶을 더한 두 세대분의 권리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두 세대분의 행복을 담아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발자국으로  남겨주고 싶습니다.

 

지금 어깨가 무겁더라도 그 준비를  이제부터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세대교체를 맞는 제가 할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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