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며칠 동안 밤새며 일한 동료를 위로한답시고 사무실 회식 자리를 만들었다.
오징어 순대에 섞어찌개로 저녁 겸 일잔을 하고 그 사이에 합류한 거래선 사장님과 당구도 한 게임하고 7080 라이브카페로
노래를 부르러 갔다.
앞 친구가 18번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고 내 차례, 비장의 카드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휘청휘청 부르고 내려오는 걸음.
무대 위의 밴드마스터와 앞 자리의 친구들을 번갈아 쳐다보다 몸이 갑자기 기우뚱... 무대에서 두 계단 정도 아래 플로어로
내 몸이 내동댕이 쳐졌다.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자리로 돌아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왼쪽 다리의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계단 아래로 헛 디디며 왼 무릎이 뒤틀어졌던 것 같다. 결국 좋은 회식 분위기를 망쳐버리고 먼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사력을 다해 기어 올라와서 탈진.. 그날 밤은 그렇게 갔다.
다음 날 아침 왼 무릎은 땡땡 부어올랐고 딛고 걸을 수 없는 형편..
평소 시원찮은 왼 다리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아내가 대뜸 오후에 예약을 잡아놓은 강남성모병원에 가서 난생 처음 휠체어라는 걸
타고 진료를 받은 결과는 X-선 촬영상 골절은 보이지 않으나 보다 미세골절 및 인대손상 여부를 좀 더 정밀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다는
소견과 함께 무릎관절 전문의에게 이틀 뒤 다시 진료를 받으란 통보와 함께 무릎에 찬 피를 뽑고,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집고 귀가.
사무실에 이틀 정도 결근한다고 통보하고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웠다.
이틀이 지나 어제 다시 찾은 병원에서 다시 피를 뽑고 똑같은 진단을 다시 내리더니 정밀 검사를 위해 MRI 촬영이 필요하단다.
나오는 길에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무릎 MRI 촬영비가 70만원이란다. 허걱! 예약은 가장 빨라야 열흘 뒤인 26일..
열흘이라... 다친 지 사흘이 지난 왼 다리는 내가 보기엔 통증이 좀 덜해졌고 첨엔 엄두도 못내었던 디디고 걷기도 어느 정도는
가능해진 상태.. 갑자기 곧 나을 것이란 긍정이 나를 격려하기 시작한다. 70만원의 위력일 것이다. ㅎㅎ
눈이 쏟아진 오늘 아침... 미끄러운 길을 보니 은근히 출근을 위해 나서는 것이 두려웠다. 한 시간 남짓 눈치를 보다 용기를 내어
목발을 총처럼 집어들고 출근을 강행.. 지금은 사무실에 앉아있다. 외출을 못하니 책상 앞 컴푸터만 뚫어져라 쳐다볼 밖에......
그래도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 있는 편이 마음은 편하다.
책상 옆에 혼자 서 있는 목발 한 짝. 28년전 대학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지금처럼 반깁스를 하고 한 달 동안 병원에 드러누어 있을 때
나를 부축했던 목발... 그때의 나무 목발에서 진보된 강철 목발을 바라보며 새삼 한심스런 내 몰골을 비춰본다. 참 무력한 몸뚱이 하나
그래도 50년 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약한 내 왼 다리가 이젠 정말 지쳤나 보다. 녀석을 쉬게 해줘여하는데 아직도 갈 길은 멀리 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아프다고 비명지르고 나자빠져 누운 왼 다리에게 이 연말 동안 만이라도 휴식을 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키로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왼 다리를 작은 의자 위로 걸쳐 놓고 의자에 몸 깊이 파묻어 책이나 읽어야겠다. 음악도 듣고...
망할 놈의 망년회들은 지들끼리 잘 망하라... 저주도 가끔 쏟아가며 한 해를 이렇게 접어 갈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