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철공소

취몽인 2011. 1. 7. 13:22

 

 

 

 

 

 

 

 

철공소

 

 

 

 

그 시절 새길시장 삼거리엔 정미소가 있었고 막 찧은 쌀을 싣고갈 조랑말

구루마가 주루룩 오그락지 말리듯 늘어서 있었지 기억컨데 그 맞은 편 덕

화의원옆에 고장난 트럭처럼 대동철공소가 윙윙 쇳가루를 날리며 벌겋게

녹슬고 있었지 둥글게 쇠를 깎던 일제 센빙 두대 폭죽처럼 불꽃을 튀기던

그라인더 하나가 센빙 뒤쪽에 쪼그리 고 있었고 왔다리 갔다리 하며 긴 강

판을 다듬던 세이빠가 놓였고 그 옆으로 모서리 가 문드러진 나무 테이블

위로 굳건한 턱을 벌린 크고 작은 바이스들.. 다시 그너머 벽 위로 캘리퍼

스며 몽키며 스패너들이 키 순서로 쭉 박혀 기름때를 흘리고 있었지 매케

한 쇠 타는 냄새와 연기 그리고 용접봉이 발갛게 녹아내리는 뒤편으로 가

면 코딱지 만한 방이 하나 있었고 누군가는 시커멓게 번들한 얼굴을 눕히

고 앓는 소리를 흘렸었지

 

세 살 쯤이었을거야 구석 방 찌든 쇳기름 벽위로 돌가루 포대 도배를 하던

날 엄마 손을 놓친 녀석은 뒤뚱 그라인더 날카로운 불빛을 피해 얼굴 가리

고 아르곤 용접하던 아버지를 피해 잠깐 멈춰 선 센빙을 집고 하얗게 빛나

는 정미소 앞 조랑말에 끌려 가고 있었지 뭘 밟았는 지는 기억에 없어 미끄

러지며 손을 디디자 드르륵 철판을 뚫던 드릴은 두두둑 닭발 같은 손가락

네개를 문지르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철판을 뚫었지 새신병원을 갔

던 것 같아 달리는 엄마에 안겨 유난히 빨간 피를 흘리는 왼손을 보며 울었

던가? 울었을거야 그러는 중에 눈부시게 바라보는 점백이 흰 조랑말 눈곱도

보았던 것 같애

 

어스러져도 붙어 있던 손가락 세 개는 다시 붙이고 어딘가로 튀어버린 한 손

가락은 한 마디만 남긴채 마감하고 철공소는 그 후로도 오륙년 더 쇠를 깎고

쇳가루 속에 묻힌 손가락 두마디를 썩히고 새길시장 삼거리를 지키다 알콜

중독으로 죽은 공장장 덕에 벌겋게 녹슨 문을 그예 닫고 말았지 아버지는 쇠

다루던 손으로 목수일을 새로 시작하고 다시 붙인 손가락들은 희미한 실밥자

국들과 함께 조금씩 자라고 한 마디 남은 녀석 또한 같이 굵어져 만 갔었지 센

빙이고 세이빠고 그라인더고 다이스는 그 후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그날 내

손가락들을 씩씩하게 다루던 키 큰 전동 드릴은 원대동 제3공단 큰 아버지 대

동철공소 시퍼런 문 바로 옆에 서 오랫 동안 나를 기다렸었지 지금 왼 손을 들

어 유난히 뭉특한 네 번째 손가락을 보면 새길시장 삼거리 키 큰 정미소 피댓줄

소리 흰 말 우는 소리 쇠 깍는 소리 불 튀는 소리 녹스는 소리 센빙의 우잉 소리

놀란 엄마의 울음 소리 핏빛으로 자꾸 들려 

 

 

 

 

201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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