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캐리

취몽인 2011. 4. 13. 13:48

 

 

 

 

 

 

 

 

 

캐리

 

 

                                2011. 4. 13

 

지금은

쇠꼬챙이 같은 타워의 그늘이 드리운

두류산 기슭 골목

그날도 오늘처럼 나른한 봄날이었다

 

우르르

내당시장으로 꺽인 모퉁이를 돌아

인국이와 헤어지자 저멀리

전봇대 버팀줄 아래 캐리가 매여 있었다

 

아버지

그리고 몇몇 아저씨들에 둘러싸여

이미 축 늘어진 캐리 우우우

비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신음으로 매달려 있었다

 

아주 먼

도무지 눈길이 닿지 못할 거리였지만

눈도 코도 입도 하늘을 바라보며 아프게

죽어가던 캐리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오늘 아침까지 등을 쓰다듬던 따순 손길은 무엇이며

목 꿰고 매달아 패죽이는 이 손길은 무엇이냐

황당한 증오가 검은 눈에서 내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물녘

집 건너 공사판 마당에선 개털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우리 집 깊은 부엌에선 캐리가 끓고 있었다. 한 사흘

미안하고 무섭고 부끄럽고 미워서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했다

 

두류산

지금은 쇠꼬챙이 같은 타워가 정수리에 박혀 아프지만

풍뎅이 잡으러 함께 온 천지를 헤매던 마당 같은 산

그 그늘에서 얼떨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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