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금요일
2011. 4. 22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서늘한 비에 창밖 공원 가난하게 피어있던 벛꽃잎들이 그새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 낙하의 자리를 파릇한 나뭇잎들이 채우고 있으니 아쉽진 않다.
요즘은 다니는 길마다 꽃잔치다. 대공원길은 아주 인상파의 파스텔 그림이다.
내 인생에도 저렇게 눈부신 꽃날이 있었던가? 있었겠지. 봄처럼 아주 짧은...
그리고 그 보다 더 싱싱했던 초록의 날들이 더 많았겠지.
그 날들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봄비에 씻겨내려가듯 후줄근하게 살았을 뿐.
가지는 말라 볼품 없어도 그래도 튼실한 열매가 달렸음에 위안을 얻을 일이다.
내가 아니면 도무지 맺힐 수 없었던 열매들..
그 열매들의 완벽한 숙성과 세상 속에 또 다른 나무로 설 준비가 끝날 때까지
섭섭한 봄과 지치는 여름과 안타까운 가을과 침잠하는 겨울을 무던히 지낼 일이다.
봄비는 내년에도 내려 새로운 벛꽃을 씻어내릴 것이고
나는 조금 더 자란 내 발치의 몇몇 성과들에 묻은 꽃잎을 훔쳐내며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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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정희성시인의 시집을 읽다 낮에 한 생각을 되살리게하는 詩를 한편 발견하여 올려 둔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정희성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듯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이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