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죽은 목각 인형의 방문> 윤성근

취몽인 2011. 7. 15. 11:16

 

 

 

 

 

 

 

죽은 목각인형의 방문 / 윤성근

 

 

 


1

저물녘,

와이샤스 한 장을 빨아 널어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기다렸다.

황혼이 바다 하나를 적시면서부터

더 확고한 어둠에 몸이 갇히기 직전

삐거덕 삐거덕

작은 바퀴 움직이는, 걸어놓은 흰 샤스 위에

붉은 나비들이 날아앉고 있다.

점차 너무 오래된 옷자락은 헤어져

구멍이 뚫어지고

비로소 어둑어둑 함몰하는 바다에

교통순경의 호루라기 소리가

일순, 바다를 경직으로 몰아 넣는다.

 


2

지난 여름의 입술이 걸린

나무기둥을 향하여

손 뻗혀 오는 단단한 가슴팍을 향하여

우리가 다 함께

돌무덤을 쌓은 근처 -

아아, 보인다 보인다 모두 보인다

건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저 텅빈 죽음의 초라한 궤적들.

누가 다스릴 것인가 다스릴 것인가

여분으로 남아 있던 바다마저

쿵쿵 아무렇게나 피를 쏟는데,

나는 끌고온 유모차를 잃어버리고

발을 절며 언덕을 넘어간다.

 

 

 

 

* 내 존경하는 윤성근선배가

  4월 24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뒤늦게 듣습니다.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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