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목각인형의 방문 / 윤성근
1
저물녘,
와이샤스 한 장을 빨아 널어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기다렸다.
황혼이 바다 하나를 적시면서부터
더 확고한 어둠에 몸이 갇히기 직전
삐거덕 삐거덕
작은 바퀴 움직이는, 걸어놓은 흰 샤스 위에
붉은 나비들이 날아앉고 있다.
점차 너무 오래된 옷자락은 헤어져
구멍이 뚫어지고
비로소 어둑어둑 함몰하는 바다에
교통순경의 호루라기 소리가
일순, 바다를 경직으로 몰아 넣는다.
2
지난 여름의 입술이 걸린
나무기둥을 향하여
손 뻗혀 오는 단단한 가슴팍을 향하여
우리가 다 함께
돌무덤을 쌓은 근처 -
아아, 보인다 보인다 모두 보인다
건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저 텅빈 죽음의 초라한 궤적들.
누가 다스릴 것인가 다스릴 것인가
여분으로 남아 있던 바다마저
쿵쿵 아무렇게나 피를 쏟는데,
나는 끌고온 유모차를 잃어버리고
발을 절며 언덕을 넘어간다.
* 내 존경하는 윤성근선배가
4월 24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뒤늦게 듣습니다.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이야기舍廊 > 좋은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노숙 / 김사인 (0) | 2011.08.31 |
---|---|
[스크랩] ?새한테 욕먹다 / 고진하 (0) | 2011.08.31 |
유월 / 유홍준 (0) | 2011.06.08 |
반성 16 / 김영승 (0) | 2011.05.26 |
뒷 모습 / 문정희 (0) | 2011.05.03 |